# 서울 소재 한 고등학교에서 영양사로 근무하고 있는 김가희(가명, 29)씨는 최근 다량의 식용유를 자비로 구매해 학교 몰래 교내에 반입했다. 18ℓ들이 식용유를 열 통(약25만원 상당) 넘게 구매한 김 씨는 이를 교내 식당에 있던 급식용 식용유와 섞어 폐식용유 처리를 했다.
지난달 초 급식비 횡령과 식용유 등 무단반출로 얼룩진 ‘충암고 급식비리 사태’ 이후 교육청이 폐식용유(폐유) 발생 비율을 엄격하게 관리·감독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김 씨는 ‘혹시나’하는 두려움이 커졌기 때문이다. 식용유를 빼돌리지 않았지만 김 씨가 관리하는 학교 식용유가 다른 학교에 비해 폐유발생비율(새 식용유 대비 쓰고 난 이후의 폐식용유 양의 비율)이 비교적 낮았던 게 원인이었다. 김 씨는 학교에서 구매한 식용유에다 본인이 산 식용유를 더해 폐유발생비율을 인위적으로 높인 것이다.
식용유를 구매해 폐유발생비율을 조작(?)한 이는 김 씨 뿐이 아니다. 김 씨는 “나 이외에도 급식용 식용유를 자비로 산 동료 영양사들도 꽤 된다”고 말했다.
‘충암고 사태’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번지고 있다. 서울시 교육청은 충암고 사태 이후 서울시내 모든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최근 3년치 폐유 발생 비율 기록을 제출받았다. 이에 학교 영양사들 중에는 괜히 꼬투리가 잡힐 것을 싫어해 자기 돈으로 식용유를 구매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다수의 중·고교를 거래처로 두고있는 한 식자재 업체 주인은 “충암고 폐유 사건이 터지고 나서 신기하게도 전에는 안 보이던 개인 고객들이 식용유를 다량으로 구매해가는 일이 잦아졌다”며 “아마도 학교 급식관계자들인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또 지난 10일 폐유 발생 비율이 30% 미만인 학교들에 ‘비율이 낮은 이유’를 서면으로 제출하라고 통보했다. 폐유 발생 비율이 지나치게 낮으면 식용유를 그만큼 많이 재사용(재탕·삼탕)하거나 최악의 경우 학교측이 식용유를 빼돌렸다고 간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영양사들이 소통하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불만이 쇄도했다. 한 영양사는 교육청의 통보에 대해 “학교 급식 영양사를 왜 죄인 취급하느냐”며 “마치 내가 폐유를 빼돌렸다고 의심하는 게 아니냐”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사립고등학교 급식영양사로 일하는 최진아(가명, 28) 영양사는 “폐유 발생 비율은 재료와 조리방법에 따라 다르게 나오고, 튀김요리시 쓰는 식용유양에 따라서도 많이 다르게 나타난다”며 “처음부터 교육청이 ‘돈가스 100인분 당 식용유 3통’과 같이 명확한 기준을 정해 놓았으면 혼란이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폐유 발생 비율 관련) 수치만 갖고 잘잘못을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 향후 폐유 관련 구체적인 규정을 마련하려는 계획은 아직 없다. 현장에서 고생하시는 분들의 업무 의욕이 꺾이지 않는 선에서 조심스럽게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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