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마음이 놓이네요. 이젠 추수에 전념해야죠.”
25일 낮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한 식당. 대북 확성기가 설치된 조강리 대피소에서 ‘대피’와 ‘귀가’를 반복해 오던 조강리 마을 주민 몇몇이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점심식사에 반주를 곁들인 자리다.
“남북 대치 상황도 해결되고 비도 와 모처럼 친구들과 시내로 나왔다”면서 “마음이 편한 상태에서 술잔을 기울이니 술맛이 더 난다”고 밝은 표정을 지었다. 신정철씨는 “전쟁이 날 것이라고 생각은 안했지만 남북 대치 상황이 끝나 얼마나 홀가분 한지 모르겠다”면서 “예전처럼 집에서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고 무엇보다 생업에 복귀할 수 있게돼 기쁘다”고 말했다.
이날 대곶면 식당 주인들도 모처럼 손님이 늘자 “그동안 시국이 불안해 개점휴업 상태나 마찬가지 였는데 매출도 오르고 며칠 못 봤던 마을 주민들도 다시 만나게 되니 좋다”고 즐거워했다.
이날 새벽 남북 협상 극적 타결 소식에 인천 서해 5도에서 경기도, 강원도에 이르는 접경지역 주민 2만 여 명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20일 북한군 연천 포격 발생 닷새만이다.
이들은 전날까지도 낮에는 농사일, 밤에는 대피생활을 이어가다 이날 새벽 남북 협상 타결 소식을 듣고서야 완전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강원도 화천 철원 등 접경지역 주민들은 아침 일찍부터 논, 밭으로 나가 출하 시기를 놓친 농작물을 살피고, 물도랑을 정비했다.
특히 중부전선 최대 곡창지대인 철원평야에서 농사를 짓는 주민들은 이날 오전부터 민통선 출입 통제가 평상시 수준으로 회복되자 그동안 가보지 못한 논을 찾아 벼 상태를 살폈다.
김진수 철원군 대마리 이장은 “전방 출입 통제가 풀려 걱정을 덜었다”면서 “다만 목함 지뢰 도발에 대해 북한이 유감 표명에 그친 것은 다소 아쉽다”고 말했다.
민통선 출입은 평상시 수준으로 회복됐지만 일부는 제한적이었다. 대북 방송 시설 운영 시간이 이날 정오까지로 정해진데다 전진배치한 북한의 화력 등이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파주 민통선내 대성동마을 김동구 이장은 “외출은 가능하지만 군으로부터 영농은 자제해 달라는 연락이 와 밭일을 자제하고 있다”면서 “전진 배치된 북한 전력이 철수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면 민통선내 영농은 물론, 외부인의 민통선내 영농도 예전 수준으로 회복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연평도 등 서해5도 주민들도 남북 긴장 상태가 해소되자 온종일 밝은 표정이었다. 군 부대의 외출 외박 면회 금지로 얼어붙었던 민박집과 식당에 온기가 되살아나고, 조업 통제로 발길이 끊긴 낚시 관광객들의 문의도 서서히 되살아 나고 있다. 대연평도 남부리에서 H민박을 운영하고 있는 방영호씨는 “지난 20일 북한군이 경기 연천에 포격을 한 뒤 숙소 예약을 한 3개팀이 취소했다”면서 “오늘은 태풍 고니때문에 배가 들어오지 못했지만 예약 문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서해5도 어민들은 9월 시작되는 가을철 꽃게잡이에 큰 기대감을 표시했다. 어민 박모(55)씨는 “조업통제로 어장에 설치한 통발을 거두지 못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서 발만 동동 굴렀는데 이제 한시름 놨다”며 “예상보다 길어졌지만 남북이 극적 합의를 이뤄 다행”이라고 말했다. 인천해경은 “태풍 고니 영향과 맞물려 아직 조업통제가 해제되지 않았지만 9월 꽃게잡이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라면서 “중국어선이 들어와 꽃게 조업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사전 차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홍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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