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판 때마다 방청을 마치고 나오면 항상 해맑은 모습으로 웃으면서 저희들을 위로해주고 격려해주는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위로와 격려에 그치지 않고 우리 아이의 휴대전화 번호를 물어 병상의 딸과 직접 여러 차례 통화하면서 힘을 내도록 해주셨습니다. 1년이 넘도록 변함 없이 이어지는 관심과 격려는 힘 없는 피해자들의 아픔을 보듬고자 고민한 작은 관심이었습니다.”
지난 3월 18일 김진태 검찰총장 앞으로 한 통의 편지가 날아왔다. 검사의 친절에 감동한 한 피해자의 부친이 고마움을 표현하는 사연이었다. 편지의 주인공은 권동욱 대구지검 경주지청 검사(33·사법연수원 41기). 지난해 2월 수많은 청춘의 목숨을 앗아간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사고의 피해 학생인 김이연 양(20·여·가명)의 아버지 김 모씨가 권 검사의 노고에 감동해 직접 검찰총장 앞으로 서신을 전한 것이다.
김씨는 시간이 흐르면서 마우나리조트 사고 피해자에 관심을 갖지 않는 현실에 한때 크게 낙담했다고 한다. 피해 학생들과 가족들은 재판과 병원생활이라는 외로운 싸움을 견뎌내야 했다. 이 때 피해자들의 입장에 서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은 이가 권 검사였다고 한다. 특히 김양의 딱한 사연에 안타까워하며 먼저 나서서 손을 내밀었다.
어려운 경제적 여건에 근근이 살아가던 다섯 식구에게 김양의 사고는 감담하기 어려운 불행이었다. 일주일에 여섯번이나 병원에 가야 하는 상황에서 부모 중 한명은 하루 종일 김양의 치료에 매달려야 했다. 사고를 낸 코오롱 측에서 병원비를 지원했지만 통원 치료에 따른 부대비용이 발생해 경제적 부담도 날로 커졌다.
분한 마음에 김양의 아버지는 재판 방청을 하루도 빠짐 없이 챙겼다고 한다. 장애를 가진 몸을 이끌고 부산에서 경주로 다니며 1심 재판을, 항소심 재판은 대구까지 와서 챙겼다.
권 검사는 김양의 아버지를 직접 상담하고 매 재판 기일을 알려주고 방청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재판이 끝나면 김양 아버지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버팀목이 돼줬다. 권 검사는 심신의 고통과 싸우고 있는 김양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재판의 진행 상황을 들려주고 안심을 시켰다. 또 재판부의 양해를 얻어 김양이 병상에서도 재판에 직접 참관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권 검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경주지청 내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김양의 아버지를 연결시켰다. 넉넉지 않은 가정 환경을 염려해 생계비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 경주범죄피해자지원센터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월 100만원씩 모두 300만원의 범죄피해자지원금을 김양 가족에게 지급하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상담을 해주고 코오롱 측 변호사와도 연락할 수 있도록 했다.
권 검사는 김양의 예후를 살피면서 지난 6월에는 선물도 주고 받았다고 한다. 그는 김양 외에도 다른 피해 학생 2명의 민사 손해배상 소송을 무료로 돕고 있다.
권 검사의 노력은 대검찰청과 법무부에까지 보고됐다. 대검과 법무부는 지난 4월 10일과 15일 각각 격려금과 꽃바구니를 권 검사에게 전달했다. 권 검사는 매일경제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피해자와 가족들이 큰 고통을 겪고 있음에도 관심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재판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피해자 지원의 필요성을 느꼈다”며 “검사로서 당연한 일을 한 것이고, 피해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양의 아버지는 “권 검사님과 경주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아름다운 모습이 우리 사회에 모범이 되고, 더불어 함께 하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다시는 우리와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지난해 2월 17일 발생한 경주 마우나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고는 새내기 대학생 10명을 사망하게 하고 204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대법원은 최근 패널 시공자 박 모씨(49) 등 책임자 5명에 대해 징역·금고형을 지난 9일 확정했다.
[김세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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