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 수 백개를 운반해주면 원하는 만큼 퀵비를 지불할게요.”
지난 8일 퀵서비스 전문 A업체는 ‘은밀한’ 의뢰 전화를 받았다. 이른바 보이스피싱 ‘대포통장’을 운반해달라며 이 업체는 기본 요금 이 외에 1건 당 별도의 ‘추가 보너스’를 지급하겠다고 유혹했다. A업체 관계자는 “원하는 만큼 돈을 지불하겠다는 제안에 당장 범죄 집단임을 직감했다. 나중에 탈이 날 경우 보이스피싱 일당의 해코지 가능성도 걱정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당시 곤혹스러웠던 순간을 전했다.
보이스피싱 범죄가 활개를 치면서 이처럼 퀵서비스 업체에 검은 유혹의 손길을 뻗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대형 업체들의 경우 이 같은 제안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지만 ‘백지수표’식으로 거액의 수수료를 지불하겠다는 제안이 들어올 경우 영세 퀵서비스 업체들은 유혹의 손길을 쉽사리 뿌리칠 수 없다는 게 경찰의 전언이다.
14일 퀵서비스 업계와 강남경찰서 등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범죄 일당이 대포통장 운반을 의뢰하면서 퀵서비스 업체에 별도로 약속하는 보너스는 배송 한 건 당 통상 1만~3만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A업체 사례처럼 수 백, 수 천 개의 대포통장 운반을 맡기면서 아예 “부르는 값을 지불하겠다”고 약속하는 범죄 일당도 최근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강남구의 B퀵서비스 업체 대표는 “기본 운반비 1만원에 수 만원을 더 얹어주겠다는 제안이 부지기수로 많다”며 “얼마를 더 얹어주겠다는 전화가 걸려오면 십중팔구는 보이스피싱 범죄 일당”이라고 전했다.
경찰은 퀵서비스 업체들에 쇄도하는 검은 유혹을 잘 활용할 경우 범죄조직을 효율적으로 검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의 자정 노력과 신고를 당부하고 있다.
B사의 경우 지난해 보이스피싱 일당의 은밀한 제안을 거부하고 강남경찰서에 의뢰자를 신고해 검인 검거에 큰 도움을 줬다. 이 업체 대표는 “신고 이후 잔류 일당에게서 매일 협박 전화에 시달렸다”며 “범죄 일당의 제안을 거부하고 경찰에 신고를 할지, 아니면 묵인하고 내 호주머니를 채울지는 그야말로 종이 한장 차이였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금융사기에 동원된 대포통장은 모두 4만5000건에 달한다. B업체 대표는 “보이스피싱 범죄를 잘 모르는 퀵서비스 기사가 현장에 많은데 경찰이 이들 현장 기사들을 상대로 관련 예방 및 대처법을 알려주는 교육을 실시하는 것도 범죄 근절을 위한 좋은 대안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윤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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