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 씨(73)를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했다. 노씨는 24일 오전 10시 40분께 서울고검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노씨는 경남기업 측으로부터 청탁을 받고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2007년 12월 특별사면 대상자에 포함되도록 뒤를 봐줬다는 의혹에 휩싸인 상태다.
당시 성 전 회장은 행담도 개발 비리 사건에 연루돼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았지만 누군가에서 언질을 받았다는 듯이 상고를 포기해 유죄를 확정 받았다. 그후 한 달여 만에 특별사면을 받아 그 배경에 대한 의문이 증폭됐다.
노씨를 접촉한 인물은 노씨와 같은 PK(부산·경남) 출신인 김 모 전 경남기업 상무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특별수사팀은 최근 김 전 상무를 소환 조사하면서 성 전 회장이 김 전 상무에게 노씨 자택을 찾아가도록 지시한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씨는 이날 조사를 받으며 경남기업 측의 접촉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부적절한 부탁이라 단호히 거절했다”는 취지의 소명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씨가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른 건 이번이 네 번째다. 앞서 2004년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에게서 인사 청탁 대가로 3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됐고, 2008년에는 세종증권 매각 비리에도 연루돼 재판에 넘겨졌다. 2012년에는 자신이 회장으로 재직 중이던 회사의 대표와 공모해 회사 돈 14억원 상당을 횡령해 사적으로 유용한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여러 차례 비리에 연루됐던 탓인지 노씨는 이날 취재진을 피해 비공개 출두했다. 특별수사팀 관계자는 “당사자(노건평 씨)의 동의를 받아 (소환) 조사 사실을 알리게 됐다”고 말했다.
노씨가 이날 소환 조사까지 받게 됐지만 처벌까지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설사 금품을 수수했더라도 알선수재나 변호사법 위반 정도인데, 이들 범죄는 이미 공소시효 7년이 만료됐기 때문이다. 다만 노씨가 성 전 회장과 경남기업 측과 또 다른 금품 거래를 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노씨와 함께 24일 출석을 통보 받았던 김한길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검찰 소환에 불응했다. 김 전 대표는 2013년 당 대표 경선에 나서면서 성 전 회장에게서 수천만원 상당의 지원을 받았다는 의심을 받는 상황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여권 인사들은 서면 조사로 그치면서 야당 대표를 지낸 인사를 소환하려 한다. 야당 탄압이다. 검찰의 물타기 수사다”며 당론으로 김 전 대표의 소환을 반대하고 있고, 김 전 대표도 의혹이 ‘사실무근’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2012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측근을 통해 ‘공천 헌금’을 받았다는 의혹에 휘말린 이인제 새누리당 의원은 이번 주말께 검찰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특별수사팀 관계자는 “이 의원이 예정된 해외 출장 일정을 일부 취소하고 소환에 응하겠다고 확약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의원 역시 김 전 대표와 마찬가지로 성 전 회장과의 금품 거래 의혹 자체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노건평·이인제·김한길 등 정치권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거물급 인사들을 수사 선상에 새로 올렸지만 ‘성완종 리스트’ 수사는 사실상 마무리 됐다는 게 검찰 내 분위기다. 새로운 범죄 혐의를 파고든다기보다는 수사 과정에서 발견된 의심스러운 부분들을 확인하는 절차에 가깝다는 것이다. 복수의 검찰 관계자는 “조만간 수사를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6월 안으로 끝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세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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