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중에는 국내랭킹 1위 등극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결승전이 끝나고서야 알았어요.”
6살때 당구 큐를 잡았던 꼬마가 각종 당구 최연소 기록을 갈아치우면서 드디어 명실상부한 한국 당구 1인자 자리에 올랐다. 이미 지난 1월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최연소 아시아챔피언에 등극한 ‘당구 천재’ 김행직(23·전남당구연맹)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지난달 31일 강원도 양구에서 열린 ‘제3회 국토정중앙배 2015 전국당구선수권대회’ 3쿠션 결승에서 홍진표(대전당구연맹)를 40-33으로 누르고 우승했다. 김행직은 이번 우승으로 랭킹 포인트 120점을 얻어 407점으로 1위를 지켰던 허정한을 2위로 밀어내고 한국랭킹 1위자리에 우뚝섰다.
기존 최연소 랭킹 1위 기록은 2006년 고 김경률(당시 26세)이 보유하고 있었다. 김행직은 고 김경률의 기록을 3년이나 앞당기면서 ‘청출어람’을 실천했다. ‘한국 당구의 전설’로 불렸던 고 김경률은 김행직에게 스승과 같은 존재였다. 그는 “김경률 생전에 1년 반 정도 사사를 받은 뒤 실력이 크게 늘었다”고 말할 정도다.
김행직은 이번 대회에서 8강과 4강에서 각각 강동궁(수원시청)과 조재호(서울시청)라는 한국 당구의 거물들을 물리치며 우승을 예고했다. 그는 우승의 최대 고비로 준결승을 꼽았다. 김행직은 “훌륭한 선수이고 엎치락 뒤치락이 유독 많았던 준결승이었다”며 “운이 따라서 2점 차로 이겼는데 힘든 경기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여섯 살 때 처음으로 당구 큐를 잡았다. 당구장을 운영하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당구의 매력에 빠져든 소년은 매일 6시간 넘게 연습했고, 당구장에 온 손님들이 꼬마 김행직에게 번번이 쓴맛을 보기 시작했다. 그는 “학교가 끝나면 당구장에 살았다. 소문이 나서 고향(전북 익산)에서는 꽤 유명했다”고 했다.
체계적인 교육을 받기 시작한 건 2007년부터다. 경기 매탄고에 당구부가 생겨 수원에서 자취를 하면서 학업과 당구를 병행했다.
16세였던 2007년 9월 스페인에서 열린 세계 주니어 캐롬(3쿠션) 선수권대회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다. 2010년 네덜란드 주니어 대회에서도 우승했다.
그는 한국체육대학교의 입학 제의를 뿌리치고 해외 진출을 시도했다. 독일에 사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독일과 네덜란드 당구 리그에 이력서를 보냈고, 2010년 8월 독일 호스터에크로부터 “함께 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호스터에크는 1980년대부터 20년 넘게 캐롬 최강자 자리를 지켜온 토브욘 브롬달(53·스웨덴)이 속해 있던 명문팀이다.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당구 당구 분데스리가 1부리그에 진출한 셈이다.
거칠게 없었던 그의 당구 인생은 2013년 중대고비를 맞는다. 뒤통수 부분에 통증을 느껴 병원을 찾았다가 ‘뇌출혈’ 진단을 받은것. 한 동안 공백기를 가진 그는 지난해 성인 대회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이래 올해는 국내서 경쟁자를 찾기 힘들 정도로 승승장구 하고 있다. 그는 올해 1월 국내에서 열린 아시아 3쿠션 선수권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4월 열린 코리아오픈 우승에 이어 이번 대회까지 휩쓸었다. 앞서 4월 초 이집트 룩소르 월드컵에서도 준우승을 차지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묻자 “현재로서는 독일 분데스리가로 돌아갈 계획도 없다“며 ”국내에서 활동하면서 당구 대중화에 힘쓰고 싶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실력이 제자리걸음이라 고민하는 당구 애호가들을 위한 ‘팁’을 부탁하자 그는 “10년 넘게 당구를 했어도 실력이 늘 제자리인 이유는 어쩌다 한번 치기 때문”이라며 “모든 스포츠가 그렇지만 당구도 꾸준한 연습이 실력향상의 지름길”이라고 조언했다.
[매경닷컴 조성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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