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산 모바일 인스턴트 메신저(MIM) '텔레그램' 열풍이 만만치 않다. 정부의 사이버 검열 강화에 빅브라더 공포가 확산되면서 수사기관의 접근이 어렵고 보안이 강력한 메신저로 갈아타는 '사이버 망명자'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갑작스런 인기 덕분에 제작사에서는 공식 한글판까지 내놨다.
7일 텔레그램측은 이날 공식 한국어 트위터를 통해 한국어를 지원하는 업데이트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한국에서 텔레그램의 인기가 급등하면서 운영진측이 직접 한글판을 내놓은 것이다. 텔레그램은 한국에서 지난 한주 동안 약 150만명이 신규 가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텔레그램은 모든 개발자가 자유롭게 애플리케이션을 수정하고 개발할 수 있도록 프로토콜과 API, 소스코드를 공개하고 있다. 이에 국내에서는 국내 개발자들이 한글화한 버전을 쓰기도 했지만 수정과 재배포 과정에서 악성코드 삽입 등의 우려도 제기돼왔다.
이처럼 텔레그램의 인기가 갑자기 치솟은 것은 정부의 사이버 수사 강화 발표 이후 사이버 검열에 대한 두려움이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중순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도 그 도를 넘고 있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 이후 검찰은 미래창조과학부, 안전행정부, 방송통신위원회, 한국인터넷진흥원, 주요 포털사 등과 함께 대책회의를 개최하고 사이버 명예훼손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이후 '수사기관이 나와 지인의 대화 내용을 들여다 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번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국내의 인터넷 업체들은 그동안 경찰이나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이 아닌 단순한 수사협조 요청에 대해서도 고객정보, 이메일 내용이나 대화 내용 등을 광범위하게 전달해왔기 때문에 '실시간 사이버 검열'에 대한 우려를 더욱 확산시켰다.
카카오측은 '실시간 검열 등은 불가능하고 공정한 법 집행 절차에 따른 수사기관의 요청에만 협조하고 있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밝혔지만 논란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해외에 본사를 두고 있어 국내 수사기관의 접근이 쉽지 않은 모바일 메신저 가운데 보안성 측면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텔레그램이 부각됐다. 텔레그램의 제작자인 러시아 출신의 두로프 형제 역시 러시아 정부의 검열 요구에 맞서 서유럽으로 둥지를 옮겼다.
기존에도 보안상의 이유로 'WhatsApp(와츠앱)' 등 외산 모바일 메신저를 사용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광고가 없고 메신저의 기본 기능에 충실하다는 측면에서 텔레그램도 와츠앱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텔레그램은 보안성 측면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텔레그램은 기본적으로 대화 당사자 이외의 제3자는 대화 내용을 볼 수 없도록 설계돼있다. 카카오톡이 중앙 서버에 대화 내용을 저장해 수사기관이 이를 들여다볼 수 있는 것과 다르다. 지난해 말 텔레그램측은 서버 코드의 암호를 깨는 사람에게 20만 달러를 지급하는 해킹대회를 연 바 있지만 아무도 상금을 타가지 못했다. 또 비밀 대화방 기능도 있는데 이 기능을 이용하면 대화 당사자간의 대화 흔적 조차 서버에 남지 않는다. 카카오톡이 제공하고 있는 대화내용 저장 기능은 보안상의 이유로 오히려 탑재돼 있지 않다.
모바일 업계에서는 텔레그램 열풍 현상을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과거 인터넷 실명제 실시 이후 국내 인터넷 업체가 몰락했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다. 인터넷 실명제가 시행되면서 국산 SNS가 대거 몰락했고 대신 트위터, 페이스북 등 외산 SNS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또 당시 시장점유율이 한 자릿수이던 구글의 유튜브는 현재 시장점유율 70%를 차지하고 있다.
모바일 업계 관계자는 "인터넷 관련 규제가 역차별로 작용해 국내업체가 몰락하고 대신에 법적용을 받지 않는 해외업체가 국내 시장을 장악하는 일이 기존에도 많이 있었다"라며 "메신저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도 그 메신저를 써야 한다'라는 전제 조건이 있기 때문에 텔레그램이 당장 카카오톡의 아성을 넘기는 쉽지 않겠지만 메신저의 기본 기능에만 충실하다는 컨셉이 뚜렷하기 때문에 텔레그램 이용자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기 시작하면 상당한 파괴력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매경닷컴 고득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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