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개의 플러그를 꽂을 수 있는 멀티 탭을 잘못 설치해 세들어 살던 집에 불이 났다면 화재 책임이 임차인에게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14부(정종관 부장판사)는 임대인 민모(45)씨가 임차인 송모(54)씨와 자신이 보험에 가입한 동부화재해상보험을 상대로 낸 1억 4천900만원 상당의 소송에서 "원고에게 총 1억 4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고 6일 밝혔다.
2011년 12월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에 있는 민씨의 건물 2층에 세들어 살던 송씨의 집에 불이 났다.
김치 냉장고와 벽면 사이에 설치한 4구짜리 멀티 탭이 문제였다. 플러그가 꽂힌 멀티 탭을 바닥이 아닌 냉장고와 벽의 좁은 틈 사이에 무리하게 두는 바람에 전선이 눌리고 변형되면서 합선으로 화재가 발생했다.
이 불로 2층 전체가 소실되고 1층에 있던 공장 일부가 훼손됐다.
이에 집주인 민씨는 송씨와 동부화재를 상대로 수리·복구비를 비롯해 임대료 손실분 등을 물어내라며 소송을 냈다.
송씨는 재판에서 "임차인으로서의 주의의무를 다했다"고 강조했다. 전기배선에서 단락흔(전선이 합선되면서 녹은 흔적)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되레 민씨의 관리 부실로 사고가 났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국전기공사의 전기안전점검에서 별다른 이상이 발견되지 않은 점 때문에 송씨는 민씨의 주택 관리 부실을 탓할 수 없었다.
재판부는 "전기시설은 2010년 11월 실시한 전기안전점검에서 '적합' 판정을 받았다"며 "민씨가 자신의 관리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다른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어 "송씨는 세입자로서 주택을 제대로 관리했는데도 화재가 난 것이라는 점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송씨는 주택 반환 의무를 이행할 수 없게 된 데 따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다만 송씨 과실로 발생한 채무를 함께 감당하는 '부진정 연대채무'를 지지 않는다는 동부화재의 주장을 받아들여 원심을 변경했다.
이에 따라 송씨와 동부화재는 민씨에게 1억 400만원을 배상하되, 동부화재가 이 중 재판부가 설정한 금액인 9천300만원을 보험금으로 민씨에게 우선 지급하고 송씨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다.
[매경닷컴 속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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