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이 채 걷히지도 않은 14일 새벽 전남 진도 팽목항. 한 중년남성이 적막을 뚫고 분주히 움직이며 차를 나르고 있었다. 먼 바다에 자식을 두고 밤새 가슴앓이한 실종자 가족들이 그가 건넨 차 한 잔에 몸을 녹였다. "여기 온 뒤로 한달간 밤낮도 잊은 채 살았는데 봉사를 시작한 뒤론 아침에 꼬박꼬박 일어나지네요."
자원봉사단체의 차 배달을 도운 남성은 세월호 침몰사고로 실종된 단원고 양승진 교사(57)의 동생 승찬 씨(54)다.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이날 그는 '천상 선생님'이었던 형님 생각에 더 가슴이 사무쳤다. 실종자 가족들에게 차를 건넬때는 애써 씩씩한 목소리를 냈지만, 형님 얘기에는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올해는 형님이 교직에 몸담은 지 30주년이 되는 해다.
사고가 발생했단 소식을 듣고 승찬씨는 곧바로 진도에 내려와 한달째 팽목항을 지키고 있다. 사고해역에서 수습된 시신이 처음 도착하는 팽목항에서 이제나 저제나 형님 소식을 기다린지 벌써 30일째. 진도체육관에 머물고 있는 형수와 조카들은 거의 탈진 상태다.
"형님이 물 속에서 얼마나 춥겠어요. 여기서 기다리는 것도 너무 미안해요." 학창시절 씨름선수로 활약할 정도로 체격이 좋았던 양승진 선생은 학생들의 생활지도를 주로 담당했다. 지난해 부임한 단원고에서도 인성생활부장을 맡았다.
"단원고로 옮기고 나서 저한테 자랑을 많이 했어요. '애들이 하나같이 착하고 예의가 발라서 여기서는 별로 할 일이 없다'고 하셨어요." 교사 초년시절부터 생활지도를 담당하며 '악역'을 맡는일이 많았지만, 학생들이 졸업한 뒤에도 꾸준히 연락을 한다고 자랑하던 형님은 '천상 선생님'이었다.
담임을 맡지 않았던 양승진 선생은 수학여행에 따라갈 필요가 없었지만 가깝게 지내던 교감선생님이 같이 가자고 제안해 여행길에 따라 나섰다 사고를 당했다.
형을 마지막으로 본 생존학생은 승찬씨에게 '양 선생님은 구명 조끼를 입지 않고 계셨다'고 전했다. 실종된 단원고 교사 10명 중 아직 찾지못한 이들이 4명에 달한다. "선생님들이 책임감에 애들 구한다고 어디 깊이 들어갔나봐요. 이렇게 못 찾는 걸 보면…"
2남 2녀의 장남인 양선생은 집안의 기둥으로 승찬씨와는 주말마다 만나는 우애깊은 형제였다. 팔순의 노모는 사고 소식에 충격을 받고 쓰러진 뒤 아직 병원에 입원중이다. "어머님은 지금도 '네 형이 배 안에서 당뇨약은 잘 챙겨먹는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세요. 처음 일주일은 저도 형이 곧 나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일주일 정도 지나니까 현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더라고요."
처음에는 돌아오지 않는 형에 대해 화도 났다. "저한테 알통 자랑하면서 '나 건강하다'고 말하던 형이에요. 그런 사람이 왜 못 빠져 나왔는지 원망이 들더군요."
실종자 가족 수백명이 몰리던 팽목항에는 사고 한달이 지나면서 이제 20여명의 가족들만 남았다. 함께 슬퍼하던 가족들 대부분은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렀다. 14일 오후 6시 현재 시신조차 찾지못한 실종자는 23명이다. "실종자 수가 50명 밑으로 떨어지니까 겁이 나더군요. 다들 떠나고 우리만 남으면 어떡하지…"
실종자 가족대기소에 늘어가는 빈 자리를 볼때마다 승찬씨는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해 마음을 다잡곤 한다. 더 큰 두려움은 입 밖에도 꺼내기 싫은 말, '유실'이다. "몇 달이 걸리든 끝까지 기다릴 겁니다. 우리 형님 모시고 올라가야 어머님 뵐 낯이 있을 거 같아요."
[진도 = 정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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