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에 위치한 낙원상가. 외관상으로는 허름해 보이지만 서울시가 자랑하는 명물 상가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우리나라에서 음악을 한다는 사람은 한 번쯤 거쳐 가는 관문과도 같은 곳. 이처럼 낙원상가에는 온갖 악기들이 죄다 모여 있다. 관악기, 현악기, 타악기를 취급하는 악기전문 매장만 200여개가 넘어갈 정도. 낙원상가는 낙원시장이 전신인 만큼 68년 건립 당시에는 잡화점들로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80년대 초반부터 악기상들이 하나둘씩 들어서면서 어느새 악기상가로서 면모를 갖추게 됐다. 음악인들이 모이는 장소로도 유명해지면서 30년째 전통을 유지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몇 년 전부터는 서울시에서 낙후된 도심 미관을 개선하기 위해 낙원상가를 정비한다고 밝히면서 낙원상가 존립이 어려워질 거란 전망이 가득했다. 하지만 여전히 낙원상가는 건재했다. 평일 오후 시간에도 악기를 사러 온 손님들, 수리를 맡기기 위해 들른 사람들로 상가 2층은 번잡했다. 외국인들도 상당수 눈에 띄는 게 낙원상가가 관광명소로서도 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나이 지긋한 백발의 노인부터 어린 여학생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들이 악기상을 찾았다. 악기상들에 성수기는 겨울철. 지난 12월부터 손님들이 부쩍 늘면서 악기상들도 오랜만에 호황기를 누리고 있었다.
배우기 쉬운 우쿨렐레, 여성들이 많이 찾는다
낙원상가에서 가장 불티나게 판매되는 악기는 다름 아닌 기타와 우쿨렐레(Ukulele). 젊은 층을 중심으로 기타를 찾는 고객들이 가장 많이 눈에 띄었다. 기타는 여전히 낙원상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악기였다. 기타를 판매하는 한 점포 주인은 “방송에서 연예인들이 기타를 들고 나오면 다음날 똑같은 기타를 구매하려는 고객들이 줄을 선다. 한때는 씨엔블루 멤버 정용화 씨가 연주하는 하얀색 기타를 찾는 손님들로 북적거렸다”며 “방송매체의 영향이 상당히 크다”고 말했다.
판매대수는 기타가 앞서지만 우쿨렐레 또한 수요가 만만치 않다. 하와이 악기인 우쿨렐레는 4개의 줄이 달린 현악기로 기타족에 속한다. 10만원대 초반부터 20만~30만원까지 브랜드별로 다양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는 우쿨렐레는 종류별로 음역대가 다르다. 우쿨렐레를 취급하는 2층의 한 점포 주인은 “지난해부터 우쿨렐레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다 보니 하루에 10명 이상이 문의를 하러 들어온다. 기타보다 배우기 쉽다고 알려지면서 주로 여학생 등 젊은 층들이 많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젊은 고객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옛 추억을 잊지 못하고 찾아오는 연세 많으신 어르신 고객도 낙원상가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이들의 발걸음은 젊은 층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관악기 쪽으로 향했다. 관현악기 수입전문업체 대표는 “7~8년 전부터 색소폰을 찾는 50대 이상의 연령층들이 많아졌다. 그들이 구매하는 색소폰은 주로 중간 정도 가격대인 120만원대로 한 달에 10개 이상은 꾸준히 팔리고 있다”고 말했다.
30년째 낙원상가를 지켜온 최난웅 낙원상가주식회사 과장(61)은 “최근 색소폰과 기타를 찾는 손님들이 부쩍 늘었다”며 “가정에서 취미로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악기상들도 낙원상가 역사만큼이나 나이가 들면서 2세들에게 물려주는 곳도 적지 않다”며 “최신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소비자들을 상대하기 위함이다”라고 덧붙였다.
낙원악기상가번영회장을 맡고 있는 소병길 대표는 “지난해까지 경기가 안 좋아 악기상들의 타격이 컸다. 매출이 변변치 않아 적자를 볼 때가 많았다”면서도 “올 겨울 들어 상황이 반전되고 있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현재 부인과 함께 음향기기 점포를 운영하고 있는 소 대표는 “한때는 직원 5~6명 데리고 있으면서 월매출 1억원 가까이 올렸다”며 “그 시절에는 마진율도 15%에 달해 순이익 1500만원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김헌주 기자 donga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592호(11.02.02 - 09일자 설합본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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