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들과 함께 대가야 왕릉을 걷다
1500년 전 낙동강 일대를 호령했던 대가야의 찬란한 역사를 지닌 경북 고령. 그러나 땅 속에 누워 있는 이들은 말이 없었다. 따르던 이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던 순장자들의 죽음이 최초로 확인된 고령 지산동고분군은 일년 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다. 명랑한 산 자들과 함께 죽은 자들의 무덤을 함께 걸었다.
물고기 모이던 곳, 꽃강이 되다 • 대가야어북실
지난해 9월 △김해 대성동고분군 △함안 말이산고분군 △합천 옥전고분군 △고성 송학동고분군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등 가야를 대표하는 6개 가야고분군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고령 지산동고분군은 가야고분군이 지닌 대가야의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그대로 잇고 있다.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가야고분군 중에서 밀집도나 규모가 다른 지역을 압도하는 고령 지산동고분군에 대한 관심은 등재 1년을 맞은 지금 열린 각종 축제 리스트로도 확인된다. 지난 10월 6일 막을 내린 ‘세계유산축전-가야고분군’에는 2주간 15만 명 이상이 방문한 바 있다.
여행 크리에이터 올리버가 대가야어북실에서 스마트폰 촬영법을 전수하고 있다.
지산동고분군을 찾기 전 대가야읍 앞을 흐르는 회천강에 자리한 대가야어북실을 찾았다. ‘어북실’은 가야산에서 내려온 물줄기를 따라 물고기가 많이 떠내려와 어부들이 모여 살았다는 ‘어부 마을’, ‘어부실’에서 기원한 이름. 때마침 가을 꽃들이 가득 피어있었다.10헥타르 면적의 초화류 단지에 핑크빛의 핑크뮬리와 붉게 물든 댑싸리, 하늘하늘한 코스모스가 관광객들을 반긴다. 물고기가 모여들던 회천강은 앞으로도 코스모스, 백일홍, 국화가 매년 ‘꽃강’을 이룰 것이다. 꽃길을 걸었으니 이제 죽은 자들의 무덤을 걸을 차례.
고령 지산동고분군과 함께 202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가야고분군들 중 (위로부터) 고성 송학동고분군, 김해 대성동고분군, 함안 말이산고분군
202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가야고분군들 중 (위로부터)남원 유곡리와두락리고분군, 창녕 교동과송현동고분군, 합천 옥전고분군
대가야의 화려한 이야기 • 고령 지산동고분군
고대국가 대가야의 중심이었던 경북 고령은 박물관, 전시관, 수목원은 물론 식당, 카페, 생활편의시설까지 ‘대가야’가 붙어 있었다. 오죽하면 군청 소재지 이름도 ‘고령읍’에서 ‘대가야읍’으로 바꿨을까. 대가야읍을 병풍처럼 감싼 주산(310m)의 산성 위에는 남쪽으로 능선이 뻗어 있고, 우리나라 최초로 발굴된 순장묘 왕릉인 지산동44호와 45호 무덤을 비롯, 대가야가 성장하기 시작한 서기 400년경부터 멸망한 562년 사이에 만들어진 왕들의 무덤 등 704기의 무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무덤 704개가 한 곳에 있는 곳은 세계적으로 드문 사례.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무덤은 지름 27m에 달하는 44호분이다. 주산 구릉의 맨 꼭대기에서 열 지어 늘어선 5기의 대형분 가운데 남쪽으로 100m 정도 떨어진 경사면에 동떨어져 위치해 있는데 1977년 경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최초로 발굴됐다. 대가야읍 지산리에 위치한 고령 지산동고분군은 일제강점기였던 1906년 일본인 세키노가 첫 발굴 조사한 이래 70년대에 경북대와 계명대가 발굴한 중대형분들을 비롯해 비교적 크기가 크고 외형이 확실한 고분들에 한해 일련 번호를 매겨 왔다.
고령 지산동고분군 44호
최초로 순장 풍습이 확인되다 • 지산동 44호분
20여 분 주산을 오른 끝에 44호 고분을 마주한다. 왕릉 트레킹을 쉽게 생각했던 일행이 “생각보다 힘들다”며 벤치에 털썩 주저 앉는다. 고분군 사이 외따로 서 있는 소나무가 그늘 쉼터 역할을 한다. 전무하다시피했던 정부 지원 대신 학계의 땀을 모아 발굴된 44호 무덤 안에는 10대 소녀, 20대 여성, 30대 부부, 50대 남성, 시녀, 시종과 호위무사, 창고지기와 마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골이 발굴됐다. 해설사는 “일제에 의해 훼손되고 도굴되던 일제강점기부터 1970년대까지 숱하게 이루어지던 도굴 때문에 고분군 주변에는 소주병과 라면 봉지가 뒹굴 정도였다”고 말했다.무엇보다 우리나라 최초로 순장(왕이나 신분 높은 사람이 죽었을 때 그를 위해 동물이나 사람을 죽여서 함께 묻는 장례 풍습) 풍습이 확인됐다는 것이 44호분의 특이점. 발굴 당시 무덤 안에는 3기의 대형 돌방과 이를 둘러싸듯 32기의 소형 순장돌덧널이 배치돼 있었다. 특히 40명 이상이 한꺼번에 순장된 것은 이곳이 최초. 대부분 도굴됐지만 금귀걸이, 금동그릇, 은장식쇠창, 야광조개국자 등이 발견됐는데, 출토유물과 고분의 규모와 입지를 볼 때 가야고분 중 최고의 위계를 가진 왕릉으로 보인다는 것이 44호분에 대한 학계의 평이다.
(좌)44호분에서 발견된 야광조개국자는 오키나와가 원산지로 대가야의 원거리 교역 활동을 보여준다. (우)고분 속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박물관은 순장 풍습을 확인해준다.
사망한 뒤에도 살아 있을 때의 삶이 계속된다는 믿음은 당시 강력했을 터. 대형분의 경우 지름이 30m 가까이 되는데, 산 위에서 아래로 내려올수록 무덤의 크기가 작아졌다. 죽은 자리와 무덤 크기 역시 생전 자신의 위치를 대변하는 걸까.죽은 이가 내세에서도 잘 살기를 바라는 믿음
44호분까지 올랐더니 때마침 해가 지고 있다. 무덤들이 봉긋하게 지상으로 도열해 있는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1호 무덤에서 5호 무덤을 향해 아래로 바라보는 풍경이 압권이다. 죽기 전 누렸던 광명을 사후에도 높은 곳에서 누리고 있는 자들과, 그들을 따라 함께 묻혀야 했던 이들의 말 못할 슬픔까지 함께 묻혀 있는 땅. 어둠이 깔린 왕릉에서 일행과 함께 줄지어 등불을 켰더니 왕릉에 누워 있는 자들이 조용히 작별 인사를 하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청사초롱을 켜고 고분들 사이를 걸었다.
무덤을 보고 내려왔더니 대가야역사관과 대가야왕릉전시관이 200m 차이를 두고 위치해 있다. 구석기 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고령 지역 유물을 전시한 대가야박물관에서는 어린이 대가야 토기 퍼즐과 탁본 인쇄가 가능해 역사 체험 여행을 원하는 학부모들에게 알맞은 장소가 될 것 같다. 마치 이글루처럼 생긴 고분의 외관을 그대로 살려 건물을 만든 대가야왕릉전시관에서는 44호분의 내부를 실물 크기로 재현해놓았다. 마네킹으로 재현된 부부, 부녀, 아이들의 모습이 전시관을 찾는 이들에게 그제야 ‘순장’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참혹한 죽음의 형태를 피부로 체험하게 만든다.호위무사의 발 아래 놓인 임금의 얼굴을 밟지 않도록 몸을 약간 삐딱하게 놓은 것도 그대로 살려두었다. 죽음과 삶의 경계가 유리창 하나 차이다. 청사초롱을 들고 죽은 이들의 무덤을 걸어 내려오며 내세에서도 죽은 이가 잘 살길 바랐던 이들의 강한 소망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본다.
고령 지산동고분군
고령군 측은 가야고분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1주년을 기념해 지난 5일부터 대구 계명대학교 행소박물관에서 ‘다시보는 세계유산, 고령 지산동 고분군’이라는 주제로 순회특별전시를 개최 중이니 고령의 왕릉전시관을 들렸다가 찾아가봐도 좋겠다.INTERVIEW | 평범한 직장인에서 60만 크리에이터로
고령 고분군에서 만난 여행 크리에이터, 올리버 & 릴리
고령 고분군에서 만난 여행 크리에이터, 올리버 & 릴리
(왼쪽부터)올리버, 릴리
“삶의 활력소였던 여행에서 기회 얻어”“올리버님 이 사진 살릴 수 있겠어요?” “저 올리버님 보고 싶어서 휴가 내고 왔어요!” “항공사 승무원인데, 나고야 여행 포기하고 왔습니다.” 팬 미팅을 방불케 하던 현장에서 만난 여행 콘텐츠 크리에이터 올리버(본명 이한울). 가야고분군 유네스코 등재1주년 기념 고분군 여행에 호스트로 참여한 그는 여행 사진 · 영상 잘 찍는 법을 알려주는 62만 팔로워의 ‘올리버 여행기@oliver_travel)’ 인스타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담길 때, 여행은 그 진가를 발휘하는 것 같다”고 말하는 올리버와 그의 파트너 릴리(본명 임화영)와 미니 인터뷰를 가졌다.
평범한 직장인에서 어떻게 크리에이터가 됐나? (올리버) 사람을 좋아해서 막연하게 인사 총무팀에 지원했다(웃음). 업무지원 일을 했는데, 사무실에 박혀 있는 게 너무 싫었다. 회사 옥상에서 맑은 하늘을 보고 있으면 우울할 정도로. 주말마다 여행 다니는 게 낙이었다. 5년 정도 회사 생활을 하다 2022년 10월에 퇴사를 하고, 6개월이라는 시간을 내게 주기로 했다. ‘프랑스에 가서 현대미술이나 배워볼까’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분출하고 싶었는데 방법을 몰랐던 거다. 그러다 폰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발리에서 한 달 살이를 하며 찍은 콘텐츠를 보정해서 인스타그램에 올렸는데, 반응이 좋았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책도 보고 강의도 보며 3개월 정도 공부하고 작년부터 인스타그램 채널 운영을 시작했다.
인스타그램 올리버 여행기 채널(@oliver_travel)
지난해 3월에 227명으로 시작, 두 달 만에 10만 명, 현재는 62만 명이 됐다. 본인이 생각하는 채널의 인기 비결은? (올리버)일단 대중성? 스마트폰과 SNS는 누구나 하니까. 내 채널엔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 ‘유쾌한 이미지’가 많다는 댓글이 많다. ‘돈을 벌자’보다 창작하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는 모습을 더 좋아해주신 것 같다. 즐겁다 보니 더 열심히 할 수 있었고. 초반에는 환영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컸다. ‘돈 주고 팔로워 산 것 아냐?’라는 시샘도 많이 받았다. 여행은 그냥 떠나는 것도 좋지만, 뭔가를 할 줄 알거나, 알고 갔을 때 그 깊이가 두 배가 되는 것 같다. 내겐 사진과 영상이 그런 거였다.파트너인 릴리 씨도 퇴사하고 채널에 합류했다고 들었다. (릴리)처음엔, 둘 중 한 명은 안정적 직장을 다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족 사업이고 굉장히 중요한데 도와주지 않으면 한계에 부딪힐 것 같다”고 하는 올리버의 말을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본인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막고 싶진 않았다. ‘지금 회사를 관두면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 생활비는 (올리버가)벌 것’이라는 약속을 받고 퇴사했다(웃음).
사진 이재중
퇴사를 밝혔을 때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나? (릴리) 오히려 부모님이 많이 지지해주셨다. 평상시에도 ‘한울이 얘는 범상치 않다, 이런 일을 하고 있을 것 같지 않다’고 하셨는데, 크리에이터로 행보를 밝혔을 때도 ‘더 늦기 전에 해봐라’ 하시며 응원해주셨다.만화 ‘원피스’ 속 루피가 롤모델이라고 들었다. (올리버) “난 해적왕이 될 거라고! 높은 놈이 되려는 게 아니야!”라는 루피의 대사가 나온다. 다른 이들에겐 해적의 No.1이 돼서 세상을 지배하는 사람이 해적왕인데, 루피의 입장에선 ‘바다에서 가장 자유로운 녀석’이 해적왕이다. 나 역시 군림하지 않고 평등한 입장에서 펼치는 ‘자유로운 삶’이 좋다. 궁극적으로는 크리에이터를 모아 높낮이가 없이 수평적인 입장에서 창작 행위를 통해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꿔나가고 싶다. 루피처럼, 하하.
앞으로의 계획은? (올리버) 현재 스레드(Threads)도 하고 있고, 유튜브도 만들 예정인데, 여행 브이로그를 통해 비하인드를 알려주거나 강연 콘텐츠를 담은 크리에이터를 위한 채널로 만들고 싶다.
[글 박찬은 기자 사진 박찬은, 가야고분군 세계유산통합관리지원단]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57호(24.12.0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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