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 전날 전격 사퇴한 조상준 전 국가정보원 기조실장이 김규현 원장을 건너뛰고 대통령실에 사의를 밝혔던 것으로 26일 확인됐다.
국정원의 '2인자'인 기조실장이 국감 직전 갑작스레 물러나며 상급자인 원장에게는 귀띔조차 하지 않은 이례적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날 국회 정보위원회 여야 간사들은 국정원에서 열린 국감 도중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설명했다. 여당측 간사인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은 "국정원장이 어제 (오후) 8시에서 9시 사이에 대통령실 관계자로부터 (조 전 실장이 사의를 밝혔다는) 유선 통보를 직접 받았고, 그래서 면직처리됐다"고 밝혔다. 유 의원은 "조 (전) 실장이 직접 원장에게 사의 표명의 전화를 한 바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야당측 간사인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국정원장이 용산(대통령실)으로부터, 담당 비서관으로부터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국정원 기조실장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있다"면서 "임명권자에게 사의를 표명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행정 절차와는 별개로 조 전 실장이 김규현 원장에게 이를 미리 보고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이에 대해 여권 관계자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조 전 실장과 김 원장의 관계가 정상적이었다면 일어나기 어려웠을 일"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유 의원은 조 실장의 사퇴 사유에 대해서는 "일신상의 사유로 파악이 될 뿐, 구체적인 면직 이유에 대해서는 국정원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전했다.
조 전 실장은 현재 병원에 입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그의 건강 상태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일각에서는 조 전 실장이 조직 내부에서 불거진 불협화음을 견디지 못하고 직을 던진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그가 직속상관인 국정원장에게 보고하지 않고 곧바로 대통령실에 사의를 밝힌 점도 이 같은 전망에 힘을 싣는다. 한편에서는 검사 출신인 조 전 원장이 외교관 출신 김규현 원장과 내부에서 잔뼈가 굵은 간부들 사이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인사 등의 업무에서 마찰을 일으켰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그가 또 다른 개인적 이유 때문에 사의를 밝혔을 수도 있다.
서울고검 차장검사를 지낸 조 전 실장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함께 윤석열 대통령의 대표적인 측근으로 꼽힌다. 그는 지난 6월 국정원 인사와 예산 등 조직 전반을 총괄하는 기조실장에 발탁됐지만 결국 4개월여 만에 퇴진하게 됐다.
한편 국정원은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발생 당시 인근 해역에 중국 어선이 있었다는 감사원의 발표에 대해 "그 당시 중국 어선이 주변에서 있었는지 유무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상범 의원은 국정원의 '휴민트(HUMINT·정보원)'가 중국 어선에 타고 있었다는 세간의 의혹에 대해서는 "(국정원이) 휴민트 승선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확인해줬다"고 말했다. 윤건영 의원은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에 대해 의원들의 질의가 있었지만, 국정원은 '수사 중인 사건이어서 답변하기 어렵다'고 답변했다"고 전했다. 윤 의원에 따르면 김규현 원장은 "피격 사건 관련 주요 정보들은 SI(특별취급정보) 첩보들을 통해 파악하고 있다"면서 "SI에 '월북'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고 밝혔다.
김 원장은 감사원이 '국정원이 합동참모본부 발표 51분 전에 먼저 표류 사실을 확인했다'고 자료를 낸 것에 대해서는 "국정원도 합참 정보를 받아서 확인했다"고 해명했다. 감사원이 자료 작성과정에서 착오를 일으켰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김성훈 기자 / 박인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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