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주의란 무엇인가. 검찰 출신 인사가 정부 요직에 지나치게 중용되고 있다는 지적에 8일 윤석열 대통령은 법치주의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윤 대통령의 말은 이랬다. "선진국, 특히 미국 같은 나라를 보면 거번먼트 어터니(government attorney ·정부 법률대리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정·관계에 아주 폭넓게 진출하고 있습니다. 그게 법치국가 아니겠습니까" 그 말에 나는 법치주의의 존재 이유를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법치는 법에 의한 통치를 뜻한다. 말 그대로 법 규정에 따라 통치하라는 뜻이다. 사람에 의한 자의적 통치는 안된다는 의미다.
검사 출신이 수장으로 임명된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을 예로 들어보자. 금감원은 어느 통치자의 자의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금융감독기구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만들어졌다. 해당 법은 금감원의 존재 이유를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금융산업의 선진화와 금융시장의 안정을 도모하고 건전한 신용질서와 공정한 금융거래 관행(慣行)을 확립하며 예금자 및 투자자 등 금융 수요자를 보호함으로써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건전한 신용질서 확립과 예금자 보호는 금융시장의 안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금융시장의 안정이 금감원의 최우선 목표여야 한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돌이켜볼 때 너무나 명확하다. 당시 금융기관들이 불법 행위를 해서 금융위기가 온 게 아니었다. 실물 자산인 주택을 기반으로 금융상품이 만들어지고 그 위에 복잡한 파생 금융상품이 잇달아 얹혔다. 나중에 만들어진 파생상품은 실물과 너무 멀어졌다. 주택 가격에 얼마나 거품이 끼어 있는지 몰랐다. '보험 상품에 기입하고 파생 금융상품에 대한 신용평가 등급이 높으니 괜찮을 거야'라고 과신했다. 그 자신감이 흔들리자 금융기관은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됐다. 서로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으려 했다. 빌린 돈은 급히 회수했다. 금융시장은 마비됐다. 중앙은행이 엄청난 돈을 풀어 공멸을 막았다.
한국의 금융시장 역시 지금 안정성이 위기다. 가계대출은 2000조에 육박한다. 이자를 못 내는 기업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는 금융 안정성을 지킬 수 있는 능력과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금감원의 수장이 되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 그게 '금융감독기구 설치 등에 관한 법률'에 부합한다. 법이 정한 목적에 맞게 인사를 하는 게 법치주의다. 법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법 실무자, 법 집행가를 수장에 앉히고 중용하는 게 법치주의가 아니라는 뜻이다.
대통령이 자신의 인사를 정당화하려면 신임 이복현 금감원장이 법에서 규정된 금감원의 목적과 미션을 달성하는데 최적의 인물이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물론 대통령실은 신임 금감원장이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으며 경제 범죄 사건 수사 경험이 풍부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금융시장 안정에는 거시 경제와 금융시장에 대한 폭넓은 식견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신임 금감원장 선임을 정당화하려면 그런 자질과 능력이 신임 금감원장에게 있다는 것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요직에 기용된 다른 검찰 출신 인사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요직은 근거 법이 있고 그 근거법에는 그 자리가 존재하는 이유와 목적이 규정돼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그 목적에 맞는 사람을 앉히는 게 법치주의다. '거버먼트 어터니'를 폭넓게 중용하는 게 법치국가라는 논리로 인사를 정당화하려는 건 곤란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나 대통령이 검사 재직 시절 측근이나 인연이 있는 사람을 중용하는 건 더더욱 법치주의라고 볼 수가 없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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