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말 특별사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입원 치료 후 퇴원해 '정치적 고향'인 대구 달성군으로 돌아간 가운데, 과거 수사로 얽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박 전 대통령의 관계 재설정에 관심이 쏠린다. 윤 당선인은 사저로 내려간 박 전 대통령에 "다음주라도 찾아뵙겠다"고 밝히며 적극적인 구애에 나섰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유영하 변호사는 지난 25일 윤 당선인의 박 전 대통령 예방과 관련해 구체적인 날짜 조율을 하고 있지는 않다고 밝혔다.
유 변호사는 채널A 뉴스에서 "제가 '아직 대통령께서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신 게 아니고, 또 이사오신지도 얼마 안 되시지 않냐"면서 "그래서 그런 시간은 조금 나중에 한번 조율을 해보자'는 식으로 말씀을 전해드렸다"고 말했다. 윤 당선인의 박 전 대통령 사저 예방 시기는 다음달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26일 정치권에 따르면, 두 사람은 '국정농단 수사' 등을 거치며 악연으로 맺어졌다.
윤 당선인은 지난 2013년 박근혜 정부에서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을 수사하다 윗선의 개입을 폭로한 이유로 사실상 좌천됐다. 이후 2016년 탄핵정국에서 '최순실 특검' 수사팀장을 맡아 사건을 진두지휘했다. 박 전 대통령으로선 윤 당선인이 자신을 구속시킨 장본인이었던 셈이다.
반면, 윤 당선인은 2012년 국가정보원 댓글사건 수사 당시 검찰 수뇌부의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해 사실상 좌천성 인사를 받는 일을 겪은 바 있다. 정치권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악연'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지난해 12월 특별사면을 받아 같은 달 31일 0시 석방된 후 삼성서울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온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24일 퇴원하고 있다. [박형기 기자]
다만 윤 당선인은 정치 입문 이후 줄곧 박 전 대통령에 대해 미안함을 드러내기도 했다.윤 당선인은 지난해 7월 대구에서 "전직 대통령의 장기 구금을 안타까워하는 분들의 심정에 상당히 공감한다"고 말했다. 또 선거 기간 중이었던 지난해 12월 방송기자클럽 초청토론회에서는 "공직자로서 직분에 의한 일이었다고 하더라도 정치적·정서적으로 대단히 미안한 마음을 인간적으로 갖고 있다"고 했다.
윤 당선인은 지난 24일 기자들과 만나 박 전 대통령을 만나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오는 5월 10일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하겠다는 의사도 강조했다. 그는 "저도 내주부터 지방을 가볼까 하는데 퇴원하셨다니까 한 번 찾아뵐 계획을 갖고 있다"면서 "건강이 어떤지 살펴서 괜찮으시면 한 번 찾아뵐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윤 당선인이 박 전 대통령과 어떤식으로든 관계 개선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친박계의 눈이 박 전 대통령 사저로 쏠려 있는 상황에서 윤 당선인이 직접 사저를 찾아 그간 쌓인 감정적 앙금을 푸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정당의 근간은 보수 색채가 강한 대구.경북(TK)에 뿌리를 두고 있는 만큼, 윤 당선인이 여소야대 정국에서 초반 국정 운영 동력을 확보하려면 보수대결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은 TK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1998년 보궐선거에서 대구 달성에 출마해 당선됐고, 이곳에서 내리 4선을 했다.
또 오는 6.1 지방선거도 박 전 대통령의 영향권 내에 있다. 윤 당선인이 친박 진영을 어떻게 끌어안느냐도 관건인 셈이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대구시장 출마를 공식화했다. 김 최고위원은 지난 24일 병원 앞에서 기자들에게 "조만간 박 전 대통령을 찾아뵐 예정"이라면서 "앞으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치적 명예회복을 위해서 저도 도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친박(친박근혜)' 정치인으로 알려진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는 향후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행보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2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곧 지방선거가 있으니 조만간 (박 전 대통령의) 구체적 행보가 나오지 않겠나"라며 "지방선거의 일정 부분에서 뜻을 내실 것 같다"고 주장했다.
한편,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4일 대구 달성군 유가읍에 마련된 자택 앞에서 대한민국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제가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고 했지만 이루지 못한 꿈이 있다. 그건(제가 못 이룬 꿈들은) 이제 또다른 이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좋은 인재들이 저의 고향인 대구의 도약을 이루고, 나아가 대한민국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저의 작은 힘이나마 보태려고 한다"고 말했다.
[맹성규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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