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지지율이 꿈틀대면서 대선 다크호스로 급부상하고 있다.
안 후보 지지율은 지난 12월 중순만 해도 5% 안팎으로 답보상태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10%까지 육박하면서 양강 구도를 형성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를 맹렬히 뒤쫓고 있다.
새해에도 이같은 상승세가 이어질 경우 대선 판도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지난달 30일 한국갤럽이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8명을 대상으로 대선후보 지지율을 조사(27~28일)해 발표한 결과, 안 후보 지지율은 9.3%를 기록했다.
지난달 29일 발표된 엠브레인퍼블릭 조사(26∼27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에서 나온 7%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주목할 부분은 20대 청년층 표심 일부가 '안 후보 지지'로 돌아서고 있다는 점이다.
갤럽조사에서 20대 지지는 이 후보 25.4%, 윤 후보 9.5%였고 안 후보는 18.9%였다.
30일 공개된 NBS조사에서도 18~29세 응답자 사이에선 안 후보가 14%로, 이 후보(26%)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대부분 무당층 성향인 2030세대는 대선 향배를 좌우할 캐스팅 보트로, 이들의 표심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안 후보가 최근 상승세를 보이는 이유는 크게 4가지다.
우선 막가파식 네거티브 공세를 벌이는 이재명- 윤석열 두 후보에 실망한 표심이 반영된 결과다.
특히 같은 보수야권인 윤 후보를 지지하는 표심 일부가 안 후보로 옮겨갔다는 분석이 많다.
윤 후보의 경우 소위 '윤핵관'을 둘러싸고 이준석 당 대표와 갈등과 대립을 겪으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졌지만 봉합을 하지 못한 상태다.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31일 이 대표를 만나 선대위 복귀를 설득했으나 이마저도 무산됐다.
윤 후보는 부인 김건희씨 '허위이력 의혹' 등에 대한 해명과 사과에도 신속히 대처하지 못해 불신을 키웠다.
윤 후보가 정권교체를 바라는 '반문 정서'에만 기댄 채 자신의 정책대안과 비전을 국민에게 제대로 보여주는 못한 것도 아쉽다.
이 후보 또한 대장동 개발의혹을 비롯해 도덕성과 막말 등의 논란으로 국민에게 여전히 비호감도가 높다.
이러니 "이재명 윤석열 두 후보가 하는 꼬락서니에 정나미가 떨어져 못봐주겠다" "안철수가 마음에 썩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두 후보보다 나은거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양강 후보에 대한 비호감이 커지면서 안 후보가 사실상 반사이익을 얻은 셈이라 할 수 있다.
안 후보가 두 후보처럼 현금 살포식 포퓰리즘 공약을 남발하지 않고, 차별화된 공약을 제시한 것도 표심을 자극했다는 평가다.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연금개혁, 경제 성장을 위한 '555 공약' 등은 단순히 표를 얻기 위한 감언이설이 아니라, 4차산업혁명시대에 우리가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과제를 잘 담았다는 것이다.
안 후보가 진영간 대립과 분열을 해소하고 국민통합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점도 돋보인다.
실제로 안 후보가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해 성탄절 형집행정지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요구한 이후 박 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자로 특별사면을 받았다.
안 후보와 부인, 딸 등 가족들이 이-윤 두 후보처럼 비리의혹이나 구설에 휘말리지 않고 자신들의 전문분야에서 묵묵히 일하는 모습도 국민에게 신선한 감동을 준다.
안 후보 지지율이 탄력을 받으면서 급해진 쪽은 양측 후보 캠프다.
민주당에선 송영길 대표가 잇따라 안 후보에게 연대 제안을 하면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송 대표는 31일에도 "안 후보가 제기하는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아젠다는 중요하다. 이재명 후보도 과학기술부총리 신설공약을 했다"며 "생각이 유사하면 합해서 나라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정치인의 자세"라고 말했다.
안 후보가 지난달 29일 "헛된 꿈을 꾸지 말라"고 했는데도 또다시 통합정부를 띄우면서 연대를 제안한 것이다.
일각에선 "민주당이 1997년 김대중-김종필 연합처럼 안 후보를 차기 정부의 총리로 영입해 대세를 굳히는 시나리오까지 준비 중"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송 대표가 안 후보에게 자꾸 추파를 던지는 것은 안 후보가 대선 막판 윤 후보와 야권후보 단일화에 나설 경우 지난해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처럼 파괴력이 클 것으로 우려하기 때문이다.
또 구애 메시지를 계속 보냄으로써 실제 단일화 성사보다는 야권의 단일화 움직임을 견제하려는 심리도 깔린 듯 하다.
윤석열 후보의 지지율 급락으로 위기를 맞은 국민의힘 또한 존재감이 커진 안 후보에게 손길을 내밀고 있다.
윤 후보는 30일 대구 기자간담회에서 "안 후보가 한국 정치 발전에 역할을 많이 해오셨다"며 "저나 안후보나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는 열망이 강한 만큼 한 번 소통할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향후 범야권 후보 단일화 협상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읽힌다.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도 언론 인터뷰에서 "안 후보와의 단일화가 일정부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자락을 깔았다.
그동안 안 후보에 대해 "정신 이상한 사람 같다"는 등 혹평만 하던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게다가 윤 후보측의 김한길 새시대준비위 위원장은 안 후보와 정치적으로 가깝고, 공동선대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민전 경희대 교수 역시 '안철수계' 출신이다.
야권 후보단일화 협상이 시작될 경우 이 두 사람이 양측간 가교역할에 나설 개연성이 크다.
일각에선 2002년 대선을 불과 한달 앞두고 성사된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안 후보는 여야의 러브콜에 대해 "제가 당선되기 위해 나왔다"며 일단 선을 긋는 분위기다.
안 후보는 평소 "현 정권은 자신은 선이고 상대는 악이라는 흑백논리로 자신들의 오류가능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낡은 진보 청산'을 주장해왔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안 후보가 민주당과 손을 잡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안 후보가 이번 선거에서 "무능한 문재인 정권을 심판해달라"고 호소하는 것도 같은 연장선이다.
다만 대선을 불과 60여일 앞두고 안 후보가 '마이웨이'를 하면서 끝까지 완주할지, 아니면 윤 후보와의 단일화에 나설지는 결국 지지율 추세에 달려 있다.
윤 후보 지지율이 더 떨어지고 안 후보 지지율이 탄력을 받아 두자릿수에 접어들면, 야권과 중도층에선 후보 단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질게 분명하다.
대선 막판 국민들의 관심도 집중되면서 단일화 협상이 극적으로 성사되면 파괴력은 상상 이상이 될 수 있다.
안 후보로선 '보수판 DJP연합'을 자신의 머릿속에 구상하면서 대선 판도를 주도하려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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