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20일 미국과 '백신 스와프'를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환율 급변동에 대비해 양국 통화를 교환하는 통화 스와프처럼 백신에 대해서도 비슷한 협약을 맺겠다는 것이다. 백신 스와프를 처음 제안한 곳은 야당인 국민의힘이었다. 지난해 말 한미 백신 스와프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었고 주호영 원내대표는 정식으로 정부에 제안했다. 이에 대해 정부와 여당은 "현실성이 낮다"는 이유로 무시했다. 정 장관도 "미국이 올해 여름까지는 집단면역에 꼭 성공해야겠다는 의지가 굉장히 강해 그걸 위해서는 자기들도 사실은 백신이 그렇게 충족한 분량은 아니라고 설명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현 단계에서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라는 미국 측의 일차적인 입장 표명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렇듯 미국과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되지도 않았는데도 정부가 백신 스와프를 언급한 것은 그만큼 백신 부족 사태가 심각하다는 뜻한다. 다음달 하순에 예정된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이 문제를 해결한 기회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발표하려면 지금부터 긴밀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문제는 미국은 한국에 줄 '백신'이라는 무기가 있지만 우리는 당장 미국에 제시할 선물이 없다는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중국에 대항하는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에 참여하는 카드를 제안하고 있으나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정부도 백신과 안보를 연계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백신을 받는 대신 반도체와 배터리 등 미국이 원하는 전략 산업 협력을 강화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지금은 아이디어 차원이지만 현실성이 없지는 않다. 다만 삼성과 LG, SK 등 우리 기업들이 협조해야 하는데 경영 전략과 맞아 떨어져야 가능한 일이다. 선언적인 수준에서 미국 내 반도체와 배터리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할 수는 있지만 실제 성과는 기업의 결정에 달렸다. 한마디로 우리가 당장 미국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립서비스' 차원에 그칠 수 있다.
유일한 방법은 한미동맹을 명분으로 미국에 백신 지원을 요구하는 것이다. 한국에 당장 얻을 게 없는데도 미국이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면 한미동맹이 굳건하다는 방증일 수 있다. 반면 미국이 거절하면 한미동맹이 그 만큼 느슨해졌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는 우리 외교를 전반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한 달여 남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백신 스와프 성사 여부가 한미동맹의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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