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긴급재정명령권을 발동해 100조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코로나19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찔끔찔끔 재원을 마련하기보다 대통령의 긴급명령으로 한 번에 재원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26일 열린 소상공인들과 간담회에서 "올해 예산을 재조정해 일단 재원을 마련해야 재난지원금이니 손실보상이니 이런 것을 할 수 있다"며 다시 한 번 긴급명령권 발동을 통한 100조원 재원 확보론을 펼쳤다.
그는 코로나19 1차 유행 시기였던 지난해 4월 처음으로 100조원 확보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본예산의 20%의 지출 항목을 긴급재정명령으로 전환해 100조원을 신속히 마련하는 게 골자다. 이에 대한 여권 반응은 부정적이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수 있지만 코로나19 사태가 긴급명령권을 발동할 만큼 국가적 위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은 김 위원장이 구체적인 재달 조달방안도 내놓지 않은 채 100조원 예산을 확보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일 뿐이며 무조건 지르고 보자는 허세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과거 긴급명령권 발동 사례를 보면 김 의원 지적을 이해할 수 있다. 긴급재정경제명령권은 헌법 제76조에 근거한다. 대통령이 내우, 외환, 천재, 지변, 중대 재정 또는 경제상의 위기 때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면 내릴 수 있는 권한이다. 가장 최근 발동된 것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금융실명제를 전격 시행한 1993년 8월이다. 총 16회의 긴급명령이 발동됐는데 14번이 한국전쟁 시기에 이루어졌다. 그 이후 금융실명제 외에 화폐 개혁과 사채 동결 같은 긴급한 상황에만 발동됐다. 코로나19 사태가 여기에 해당되는지는 의문이다. 대통령 권한이지만 국회의 동의를 거쳐야 하고 무리하게 명령권을 발동하면 탄핵 요인이 되기 때문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야당 대표가 쉽게 언급할 사안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김 위원장이 같은 주장을 반복하는 이유는 여당의 비현실적 정책에 맞불을 놓자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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