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전향적인 대북 제의가 있지 않는 이상 한반도 상황은 진전되기 힘들다"(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대선 전 대화를 통해 북미정상회담을 여는 것은 불가능할 것"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
남북관계의 경색국면 속 스티브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 특별대표가 방한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국내 전문가들은 미국의 획기적인 대북정책의 변화 없이는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1일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과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한국언론재단이 주최한 '격동의 한반도, 문정인·이종석 대담'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종석 전 장관은 "북한은 기본적으로 작년 말 미국에 공을 넘긴 상태"라며 "미국이 (북핵문제 관련) 전향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 이상 비건 부장관의 방한은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정인 특보 역시 "대선 전 북미정상회담 가능성엔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다만 문 특보는 "미국 공화당 측에선 미국이 중국과의 갈등이 깊어지는 상황에서 북한 관계 개선을 통해 외교적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기류가 보이고 있다"며 "미국이 중국 변수를 거론하면서 북미 정상회담까지 해야 된다는 목소리가 있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우리 정부가 미국을 설득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한미워킹그룹의 역할 기능을 조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문 특보는 "한미워킹그룹은 순기능과 역기능이 다 있다"고 말하면서도 "대북 인도적 지원을 등 남북한 전반적인 교류협력에 대해 규율하려고 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유엔안보리 제재결의안에 저촉되는 대북 지원 품목에 대해선 미국과의 협의가 필요하니 워킹그룹을 통해 풀어나가야 하지만, 제재에 저촉되지 않은 인도적 지원이나 개별관광은 워킹그룹에서 의제화하지 말고 우리가 그냥 밀고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도 "한미워킹그룹이 해야 될 첫 번째 일은 본연의 임무인 비핵화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통로가 되는 것"이라며 "대북제재와 관련해 꼬치꼬치 다 하는 것은 안 된다. 역할이 조정되지 않으면 없느니만 못하다"라고 강조했다.
문 특보는 "한미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남북관계 돌파구를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다"며 "그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미국과의 마찰은 감수하면서 미국을 설득해나가야한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 역시 "볼턴 회고록을 보면 미국이 북핵문제 해결에 얼마나 관심이 있느냐에 대해 우려할 수밖에 없다"며 "미국과 불협화음이 나더라도 우리 얘기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향후 남북관계를 풀어나가기 위해 서울과 평양에 각각 북측과 남측의 대표부를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북한이 폭파한 것은 정말 개탄할 일"이라며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한다"고 말했다.
문 특보는 남북 정상회담으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 특보는 "대북 특사 같은 것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보다 김정은을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나. 두 정상이 만나 막힌 것을 풀어주지 않으면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남북 정상회담만이 2년이 채 남지 않은 문재인 대통령 임기 중에 남북관계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 전 장관은 "만남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며 "정상간 만남이 결과적으로 한반도 평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콘텐츠를 우선 생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북한의 불만은 남측이 과거 합의를 이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그간 합의된 내용을 대통령이 분명히 지키고, 이에 대한 실천의지가 있을 때 정상회담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다시 만났는데, 그 이후에도 변화가 없으면 남북관계는 '제로'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오는 11월 대선결과에 따른 미국의 대북정책 전망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렸다. 이 전 장관은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면 '머들링 스루(muddling through)'가 지속돼 상황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미국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동맹에 귀를 기울여왔다. 이에 우리가 미리 스탠스를 잡아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문 특보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념과 가치를 떠나서 북한 문제를 역사적 유산으로 남기고 싶어하는 집착이 있다"며 "바이든은 상원의원 30년, 부통령 8년 등 참모에 둘러싸여 있는 기간이 너무 오래됐다. 결국 대통령이 되서도 독자적 결정을 하지 못하고 참모들에 의해 좌지우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작권 전환을 위해 당분간 한미군사연합훈련의 불가피성을 북한에 설득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문 특보는 "북한은 한미연합훈련에 대해 단기적으로 우려를 표하더라도 중장기적으로 한반도 평화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전향적으로 나와야 한다"며 "8월 한미연합훈련에 앞서 이에 대한 남북간 협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이 전 장관은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은 북핵문제를 진전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이라며 즉각 중단을 주장했다.
교체설이 나오고 있는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후임 인선을 앞두고 있는 통일부 장관 등 문재인 정부의 새 외교안보팀 구성에 대해 이 전 장관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돌파력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령 미국에도 우리 입장을 설득할 수 있도록 통일부, 외교부 등 전 관련 부처들이 총체적인 협업·조정시스템을 보강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 특보는 "문재인 대통령은 후임 인선에 앞서 안정적 상황관리, 상황 반전, 또는 강대강 대치 등 3가지 노선 중 하나를 선택해야한다"며 "후임을 인선하는 것은 어떤 노선을 택하느냐에 따라 그에 맞는 인물을 내세우면 된다"고 말했다.
[연규욱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