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1일 800만달러 규모의 대북 인도적 지원을 결정하면서 지원 시기와 규모에 대해서는 '남북관계 상황 등 전반적인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추진하겠다'며 애매모호한 조건을 달았다.
문재인정부는 그동안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해 '정치·군사적 상황과 관계없이 지속해서 추진한다'는 원칙을 강조하는 한편 북한의 영유아 및 임산부 등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의 시급성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정부가 구체적인 지원 시기를 '정치적 고려'를 통해 최종 확정하기로 하면서 원칙도 현실도 모두 외면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이번 대북 인도적 지원은 처음 거론될 당시부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이 거듭되는 데다 6차 핵실험에 따른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가 채택된 지 만 이틀 만에 발표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아울러 북한의 탄도미사일 추가 발사 움직임이 포착된 상황에서도 대북 인도적 지원을 강행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내외 비난 여론이 더욱 거세졌다.
조영기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국제 공조 틀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갑자기 지금 이것을 이야기하면 앞으로 공조가 잘 이뤄질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정부가 이같은 논란 속에 대북 인도적 지원 방침을 결정했지만 앞으로 실제 집행까지는 상당한 진통을 겪어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대북 지원에 부정적인 여론을 돌려 세우는게 급선무다.
한국갤럽이 지난 5~7일 전국 성인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응답률 18%)에 따르면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모든 대북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65%로 절반을 넘었다. 반면 '인도적 대북 지원은 유지돼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32%에 그쳤다. 심지어 한국당·바른정당 등 보수정당 지지층 뿐만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에서도 '모든 대북 지원 중단(55%)'을 응답한 비율이 '인도적 지원 유지(42%)'보다 높았다.
북한의 도발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압도적인 상황에서 정부의 바람처럼 여론이 대북 지원에 호의적인 방향으로 바뀌기는 어려운게 현실이다.
또한 이번 대북 지원이 '국내 정치용'이 아님을 국민들에게 납득시킬 필요도 있다. 일각에서는 다음달 4일 '10·4정상선언 10주년'을 앞두고 대화국면으로 전환시켜 60%대로 주저앉은 국정지지율을 끌어올리려는 고육지책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대북 제재 공조를 함께 이끌어갈 미국과 일본내의 부정적인 기류도 문재인정부에 큰 부담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15일 문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직접 대북 인도지원 시점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으며 미 국무부는 미국의 입장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한국 정부에 문의하라"고 답하며 우회적으로 불만을 표출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미국과는 대북정책 전반에 대해 긴밀히 협의하고 있고 이번 건에 대해서도 사전에 설명한바 있다"며 한미간 이견이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불식시키는데 안간힘을 썼다. 그러면서도 미국 측 반응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내용은 말씀드리기 적절치 않다"며 말을 아꼈다.
통일부의 한 관계자는 "시급성을 감안해 마냥 지원이 늦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연내에 국제기구 공여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안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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