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해빙 무드에 접어드는 것 같던 한중 관계가 다시 냉각기로 접어 들고 있다. 지난 5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문 대통령에게 전화로 축하 인사를 건네고 일대일로 정상회의 정부 단장으로 참석한 박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환대하면서 잦아들 기미가 보였던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가 오히려 더 강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독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기간인 지난 6일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사드 보복에 대한 중국의 전향적 조치가 나올 것이란 기대는 허물어졌다. 양국 정상은 이례적으로 동시 통역기를 착용하고 예정된 40분을 훌쩍 넘겨 75분간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지만, 사드 해법을 놓고 양국은 평행선을 달렸다. 한 외교 소식통은 10일 "동시 통역을 하면 일반 회의보다 대화 시간이 두 배 늘어난다”며 “단순한 덕담을 나누는 자리가 아니었다"고 전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사드 보복 철회를 요청했으나 시 주석에게서 "중국 국민의 관심과 우려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오히려 시 주석은 "북한과 중국은 혈맹 관계"라는 강도높은 표현을 써가며 6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혈맹에 기초한 한미 동맹'을 강조한 문 대통령을 에둘러 비판했다. 정부는 평창 동계 올림픽에 시 주석을 초청했지만 확답도 받지 못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중국 사드 보복은 지속될 것이라고 본다”며 “보복 완화에 대한 아무런 신호가 잡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내 중국 전문가들은 “한중 회담 이후 양국 관계에 새로운 경고음이 커졌다”고 입을 모았다. 한때 사드 출구 전략을 모색했던 중국이 다시 사드를 '핵심 이익'으로 간주하고, 거센 보복 조치를 이어갈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대선 기간 공약집에 '사드 국회 비준'을 포함시키고, 취임 후 환경영향평가를 이유로 사드 발사대 추가배치 중단까지 지시한 문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사드 번복은 없다"고 돌아서자, "중국이 혼란과 실망감을 동시에 느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 소장은 "중국이 더 이상 사드 출구 전략을 모색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시 주석이 북한을 '혈맹'이라 칭한 것은 한국에 대한 시 주석의 인식이 매우 경직돼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8월 한중 수교 25주년을 기점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한중 정상회담 전망도 밝지 않다"고 덧붙였다.
전가림 호서대 교수는 "지금 중국은 사드와 관련한 문재인 정부 입장에 대해 혼란스러움을 느낄 것”이라며 “문 대통령을 신뢰할 수 있는지, 중국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지도자인지에 대한 여러 고민을 하고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지난 한미 정상회담 때처럼 한중 정상간에도 신뢰 구축과 적극적 소통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황재호 한국외대 교수는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의 "현 상황은 양국 모두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잘 관리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양국의 공동책임"이라는 발언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역시 한중 관계를 잘 풀어 나가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중국에게 사드 배치를 논리적으로 반박하기 보다 문 대통령의 고뇌를 보여주며 올 가을 19차 당대회를 앞둔 시 주석의 체면을 세워줄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소장은 "중국 특사 파견을 포함해 양국 고위급 채널간의 비공식 전략 대회를 구축해 전략적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했다. 현재로서는 공식 대화를 통해서는 갈등이 더욱 표면화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양국이 로우키로 전략적 논의를 이어가며 상호간의 불신 해소와 이익 공동체 형성에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박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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