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동시다발적으로 불거지는 '초대 내각 인사암초'에 대해 국민과 야권에 양해를 구하면서 정면돌파 의지를 내비쳤다. 문 대통령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현실적인 구체적 인선기준을 만들라고 지시하면서, 본인이 후보시절 밝힌 '5대 인사비리 배제' 원칙에서 후퇴하는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등 이미 내정한 후보자들은 일단 모두 껴안고 가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29일 "제가 당선 첫날 곧바로 총리 후보자를 지명했는데, 그것은 최대한 빠르게 내각을 구성해서 국정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목적과 함께 인사탕평을 바라는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총리 후보자 국회 인준이 늦어지고 정치화되면서 한시라도 빨리 지명하려던 제 노력이 허탈한 일이 됐다"고 염려했다.
문 대통령은 "병역면탈, 부동산투기, 위장전입, 세금탈루, 논문표절 등 5대 비리 연루자를 고위 공직자로 임명하지 않겠다고 공약을 했다"며 "공정하고 깨끗한 공정 사회를 위해서 대단히 중요하고 지나치게 이상적인 공약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제가 공약한 것은 그야말로 원칙이고 실제 적용에 있어서는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하다"며 인사검증과정에서의 현실적인 문제를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이미 발생한 논란들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개별적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는 일이지만, 앞으로 인사를 위해 인사수석실 민정수석실 협의를 통해서 현실성있게 국민 눈높이에 맞게 원칙을 지킬 수 있는 구체적인 인사기준을 빠른 시일내에 마련해 달라"고 국정기획자문위원회와 야당에게 요청했다.
앞서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지난 26일 "저희가 내놓은 인사가 국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머리를 숙였고,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과 진성준 정무기획비서관, 한병도 정무비서관 등이 지난 주말 국회를 찾아가 물밑접촉한 데 이어 문 대통령도 나서 국회에 협조를 요청한 것이다. 청와대 차원에서 총력을 기울이면서 사실상 가용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 셈이다.
그러나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의 위장전입을 둘러싼 거짓말논란이 추가된 데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에 대한 각종 의혹도 쏟아지고 있어 청와대는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이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향후 인선기준에 대한 사실상의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이번 인사검증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위장전입에 대해, 국회 인사청문 제도가 도입된 2005년 7월 이후 위장전입자는 국무위원 후보자에서 배제하기로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의 입장표명이 나오자 야당 반응은 엇갈렸다. 국민의당은 의원총회를 열어 이 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준안에 협조하기로 입장을 바꿨고, 자유한국당은 '수용불가'를 당론으로 정했다.
이날 오후 의총을 끝내고 나온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이낙연 총리 후보자가 위장전입 등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지만 국민의당은 대승적 차원에서 총리 인준안 처리에 협조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같은날 오전 "정부·여당 일각에서 호남 총리니까 국민의당이 반대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데 이는 공당인 국민의당을 폄하하고 무시하는 지극히 모욕적인 발상"이라며 각을 세운지 몇시간 만에 말이 바뀌었다. 의원총회에서 호남 중진의원들을 중심으로 호남출신 총리에 대해 끝까지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는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중론이 모여진 것으로 보인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이날 오후 의원총회를 열고, 문 대통령이 이 총리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 처리를 요청한 것과 관련해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한국당은 "청와대가 다급한 나머지 총리인준을 받기 위해 즉흥적인 제안을 한다면 나중에 더 큰 화를 불러올 것이다”며 “대통령의 직접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하지만 이 총리 후보자의 총리인준안은 오는 31일 국회에서 표결로 처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민주당과 국민의당을 합치면 국회의원 수가 총 160명으로 표결에 부쳐질 경우 통과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더구나 인사 관련 표결은 무기명으로 진행돼 전직 동료의원인 이 후보자에 대한 통과 가능성은 사실상 확정적이라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당론으로 반대하는 인사에 대해 청와대와 여당이 표결로 밀어붙일 경우 향후 국정 운영이 경색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야당을 충분히 설득하지 않고 첫 단추를 끼울 경우 문 대통령이 강조하던 협치의 정신이 무너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정희 한국외대 정치학 교수는 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여야를 떠나 국민의 눈높이에 못미치는 발언"이라며 "5대 원칙을 어긴 것인데 5대 원칙을 어긴 게 아니라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우선 원칙을 깨뜨린 것에 대해 사과를 하고 인수위가 없이 인선을 했어야만 하는 현실적 문제들에 대해 양해를 구한 뒤, 이번 청문회는 통과시켜 달라고 했어야 했다"며 "사과를 제대로 했으면 국민들이 이해해줬을 것인데 다소 아쉽다"고 덧붙였다.
[강계만 기자 / 전범주 기자 / 김태준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