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를 하루 앞둔 9일 여의도 정치권 전체가 숨을 죽였다.
야권은 탄핵 인용을 기정사실화하면서 막판 여론전을 이어간 반면 여당은 소속 의원들에게 비상 대기령을 내린 채 관망 모드에 돌입했다.
정치권은 선고 결과에 따라 차기 대통령 선거 구도에 상당한 영향이 예상된다는 점에서 시나리오별 대응책 마련에도 분주한 모습이었다. 주요 정당들은 10일 헌재의 선고 직후 의원총회를 열고, 각각 시국 수습책을 도출해 국민들에게 발표할 예정이다.
◆압도적 인용 땐 정권교체론 탄력?
만약 탄핵이 헌법재판관의 8명 만장일치로 인용될 경우 국회의 탄핵 '정당성'이 완전히 확보된다. 탄핵을 주도했던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야권은 '전리품'을 놓고 각자 지분을 주장하겠지만 일단 각자 대선체제로 빠르게 전환할 전망이다.
민주당은 경선 선거인단 2차 모집에 돌입하면서 '바람몰이'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박근혜 대통령이 어떤 결정이 나와도 승복하겠다고 선언해 주는 게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대한민국 통합을 위해 해야 할 마지막 역할"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탄핵을 기정사실화하고 순조롭게 대선 국면으로 전환되길 희망하는 발언이다. 대선까지 불과 두 달 밖에 시간이 남지 않은 상황에서 탄핵 기세를 몰아 정권교체까지 일사천리로 분위기를 몰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묻어난다. 현재 문재인 안희정 이재명 등 민주당 후보들의 합산 지지율은 60% 안팎에 달한다. 다만 문재인 캠프는 이른바 비문(非文) 단일대오가 형성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본선이 다자구도로 치러지는 것이 민주당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일단 자체 경선에 서둘러 착수하면서 3월 중에 후보를 선정한 뒤 비문재인 진영의 후보 단일화를 모색할 전망이다. 이들은 탄핵 인용 이후엔 대선주자 지지를 결정하는 기준이 '과거'에서 '미래'로 옮겨갈 수 있다는 기대감을 품고 있다.
탄핵에 사실상 유일하게 반대했던 정파인 자유한국당은 친박당 꼬리표를 떼기 위해 일단 승복 선언을 할 가능성이 있다. 이 과정에서 강성 친박 일부가 극렬히 저항할 수도 있다. 어쨌든 한국당은 경선체제 전환과 함께 개헌론을 전면에 내세워 판도 변화를 모색할 전망이지만 여당 입장에서 이번 대선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치르는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 일부 의원들이 추가 탈당에 나설 가능성도 거론된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은 이날 "탄핵이 인용된다면 한국당의 탄핵기각을 주장한 분들은 정치적 책임을 지고, 탄핵소추에 찬성한 30명 정도 의원들은 한국당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탈당을 권유했다. 반면 인명진 한국당 비대위원장은 "저희들이 잘못한게 많이 있지만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며 "우리 당이 맡아야 할 역사적 책임과 의무가 아직도 있다"고 강조했다.
탄핵이 인용되더라도 만약 1~2명의 재판관이 기각이나 각하 의견을 낼 경우에는 탄핵의 완결성에 다소 흠이 생긴다. 탄핵 반대 진영에서 이를 근거로 불복종 움직임을 보이면서 여진이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탄핵 이슈가 빨리 잦아들지 않고 장기화될 경우 그 동안 선명성을 내세웠던 문재인 후보에 비해 통합 행보를 했던 안희정 후보나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등이 재조명을 받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기각 땐 완전히 새로운 게임
탄핵이 재판관 3인 이상의 반대로 기각되면 대선 판도는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다. 일단 대선까지 시간이 9개월 이상 남기 때문에 수많은 변수가 자연적으로 생기거나, 정치권이 변수를 만들어낼 여지도 커진다. 특히 자유한국당 입장에선 탄핵 부당성을 강조하며 보수층을 규합하고, 이참에 대선 전 개헌을 추진할 동력도 커진다. 현재 지지율 1위인 문재인 후보를 빼면 나머지 주자들도 크게 손해볼 것은 없다. 지지율 역전을 위한 시간이 확보되기 때문에 안희정 이재명 안철수 등 야권 주자들 모두 새로운 전략을 짜면서 장기 레이스에 돌입하게 된다. 일부 주자는 불복종 운동에 나서고, 반대로 일부 주자는 승복론을 주장하면서 야권의 대열이 흐트러질 수도 있다.
기각시 가장 정치적으로 직격탄을 받는 곳은 바른정당이다. 이미 의원직 사퇴라는 배수진을 쳤기 때문에 정당 존속의 명분이 급격히 약화될 수 있다.
가장 가능성이 낮은 시나리오이긴 하지만 탄핵이 각하될 경우엔 탄핵 지지층에서 헌재 불복종론이 제기될 수 있다. 또 야권을 중심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자진 하야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오면서 그야말로 정치권이 '아노미' 상태에 빠질 전망이다.
[신헌철 기자 / 정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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