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기류가 부쩍 달라졌다. 바싹 움츠렸던 분위기에서 강경 모드로 돌아선 모습이 눈에 띈다.
검찰에 수사 연기를 요청하면서 서면조사를 거론하는가 하면 연일 쏟아지는 언론의 의혹보도에 법적조치 등 강력 대응 입장을 천명하고 나섰다.
특히 16일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대통령 측근 인사의 엘시티 비자금 사건 개입 의혹을 제기한데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 “가능한 역량을 총동원해 부산 엘시티 사건을 신속·철저히 수사하고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규명해 연루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단하라”고 법무부장관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선 박 대통령이 국정 정상화에 서서히 시동을 걸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이같은 청와대 기류 변화는 크게 두가지 모멘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다름아닌 지난 14일 정치권의 특검 합의와 15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기자회견이다. 두 이벤트를 거치면서 청와대 기류가 확연하게 바뀌기 시작했다는게 청와대와 여권 안팎의 설명이다.
먼저 검찰의 대통령 수사를 앞두고 이뤄진 특검 합의는 청와대가 검찰보다 특검에 비중을 두게 하는데 결정적 영향을 줬다. 여야가 특검에 합의한 마당에 박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게 되면 추후 특검 수사를 또 받아야 하는 곤란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청와대 한 참모는 “박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밝혔듯이 검찰 수사를 감수할 것이란 입장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그런데 검찰수사를 앞두고 대통령 변호인을 선임하는 와중에 여야가 특검에 합의를 했으니, 대통령을 동네북으로 만들겠다는 의도가 아닌지 의구심을 갖게 된다”고 밝혔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야당은 검찰이 어떤 수사 결과를 내놔도 이를 비판하면서 딴지를 걸 가능성이 높다. 어차피 야당과 여론의 초점은 특검 수사에 쏠리지 않겠느냐”며 “검찰과 특검 수사를 모두 받게 해 대통령을 여러번 망신 주겠다는 야당의 노림수가 뻔한 상황에서 청와대도 검찰보다는 특검에 비중을 두고 대비를 하는게 당연한 조치”라고 거들었다.
청와대는 확실히 검찰보다 특검 수사에 대비하는 모습이 역력해 보인다. 청와대는 야권에서 특검 후보군으로 거론한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 임수빈·이광범 변호사 등에 대해 “모두 훌륭한 분들”이라며 예상 외로 담담한 반응을 나타냈다. 특검 수사는 최장 4개월간 진행된다. 촛불집회 등 험악해진 분위기 반전을 위한 시간도 벌 수 있어 청와대로서도 특검이 꼭 불리한 카드만은 아니다.
검찰이 18일을 마지노선으로 제시한 가운데, 박 대통령 변호인으로 선임된 유영하 변호사는 17일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청와대는 여전히 ‘변론 준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전날 유 변호사가 “서면조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부득이 대면조사를 해야 한다면 횟수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언급한데 이어 이날 청와대 한 참모는 “광범위하고도 산만하게 의혹이 제기된 상황에서 최소한의 준비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지난 15일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가 ‘대통령 퇴진’을 공식 입장으로 내세운 것은 청와대 강경기류에 불을 붙인 격이 됐다.
문 전 대표가 ‘퇴진 주장’ 대열에 합류함으로써 현 정국이 결국 보수와 진보간 진영 싸움으로 귀결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면서 청와대가 자신있게 강경론으로 버틸 수 있게 됐다는 분석이다. 청와대 한 참모는 이날도 “무책임한 헌정중단은 오히려 국정에 혼란만 초래할 뿐”이라며 퇴진요구를 일축했다.
결국 청와대는 장기전을 염두에 두고 기류 변화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야권이 탄핵을 선택해도 국회 총리 선임과 탄핵 의결, 헌법재판소 절차 등을 감안해 수개월이 걸릴게 뻔한 만큼, 청와대로서는 ‘버티기’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남기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