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청와대 비선실세인 최순실 씨 의혹으로 박근혜 정부 집권 이래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청와대와 집권여당에 대한 비난 여론이 밖에서 거세게 일고 있고 당내에서는 대통령 눈치 보기에 급급한 당 지도부에 대해 비주류가 지도부 해체와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요구하며 치받는 형국이다.
26일 새누리당은 긴급 최고위원회의와 의원총회를 잇따라 열고 대책마련에 부심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청와대와 정부 내각에 대폭적인 인적쇄신을 해줄 것을 요청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면서 “이번 사태와 직·간접적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교체해야 한다는 데에도 의견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전날 박 대통령의 대국민사과가 악화된 여론을 해소하는데 극히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뒤늦게 진화에 나선 것이다. 당은 김재원 정무수석을 통해 청와대에 공식적으로 이같은 입장을 전달했다.
그러나 당내 비주류는 청와대를 옹호하는데 급급한 친박 지도부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쏟아냈다.
이종구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프로그램에 나와 “친박 지도부에 둘러싸여 대통령의 판단이 흐려지면서 약이 못되고 독이 된 것 같다”면서 “지도부가 대오각성해서 필요하면 사퇴하고, 비대위를 구성하든지 해야지 현 체제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하태경 의원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국 안정화와 민심 수습을 위한 특단의 혁신 대책이 필요한데 새누리당 지도부는 헛발질만 하고 존재감이 없다”면서 “지도부가 대안을 내놓을 수 없다면 자신들의 거취에 대한 대승적 결단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열린 의원총회에서도 비주류를 중심으로 특검 등 철저한 진상규명 뿐만 아니라 지도부 총사퇴와 비대위 구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김무성 전 대표의 측근인 김성태 의원은 “더 이상 최순실을 옹호·비호하는 당 체제로는 성난 민심을 결코 수용할 수 없다”면서 “분노에 찬 국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수습하기 위해선 당청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전날 박 대통령의 탈당을 거론한 김용태 의원도 “컨트롤타워가 지금 사실상 붕괴된 상태이기 때문에 당이 정부와 함께 국정을 주도해야한다”고 말했고 권성동 의원도 “비상한 시국인데 비상한 방법을 다 동원해야 한다”면서 비대위 체제 전환을 암시하기도 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도 이 자리에서 “지난 총선서 원내 2당으로 전락했을 때보다 더 큰 쓰나미가 우리 앞에 몰려왔다”며 “현실이 더 엄중하고 엄혹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정 원내대표는 또 “청와대는 즉각 사정당국에 최순실과 그 일가의 국내 송환을 지시해주길 바란다”면서 “우병우 민정수석은 즉각 사퇴해야 하고 최 씨의 국정농단을 예방하지 못한 청와대 비서진과 내각에 대한 전면 인적 쇄신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반면 친박계는 청와대의 침몰을 바라보기만 할 뿐 속수무책인 분위기다. 윤상현 의원은 비주류의 당 지도부 사퇴 관련해 “불난 집에 부채질 해서는 안된다”며 당내 갈등을 우려하면서도 현안 관련해서는 말을 극도로 아꼈다.
한편 지난 8·9 전당대회서 당선된 이후 79일 만에 정치생명의 최대 위기를 맞이한 이 대표의 향후 거취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국정감사부터 불거진 최순실 의혹에 대해 청와대를 설득하는데 실패하고 조기 진화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이날 참석 예정이었던 ‘새누리당 머슴, 대한민국 청년을 만나다’ 특강도 취소하고 이번 사태가 해결될때까지 당사에 상주할 방침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청와대 호위무사를 자처한 이 대표가 자신의 사퇴카드로 정국 안정을 시도할 것이라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안병준 기자 / 추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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