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원을 받은 외국선사 저가공세를 견디지 못했습니다. 사(私)기업으로 해운업에서 경쟁하는데 한계를 느꼈습니다. 물류대란 사태로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한진해운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로 물류대란 여진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국회 국정감사에 나와 공개 사과했다.
조 회장은 4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산업은행 국감 증인으로 출석해 “자율협약 기간 중 채권단에 법정관리 들어가면 물류대란이 올 수 있다는 점을 전달했지만 제가 설득에 실패했다”며 “정부는 나름의 정책 기준에 의해 (법정관리)를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억울하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달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 구조조정 과정에서 한진해운 자구노력이 미흡했다며 ‘직격탄’을 날리자 정부 측과 각을 세우는 모습을 최대한 자제하며 추가 논란 진화에 나서는 모습이 역력했다.
조 회장은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법정관리 책임이 누가 가장 크냐’고 묻자 “복합적이다. 특정인을 거론할 순 없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이날 조 회장 발언에는 2014년 부실기업으로 전락한 한진해운 인수 후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데 따른 노력을 인정받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났다.
조 회장은 한진해운 인수 당시 정부 측 압력이 있었느냐는 유의동 새누리당 의원 질문에 대해 “정부로부터 한진해운 자체 경영에 문제가 있으니 한진그룹에서 지원할 용의가 있는지 요청 받았다”며 “같은 물류사업이고 영업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해 인수에 나섰다”고 운을 뗐다.
그는 “대한항공이 보유했던 알짜기업인 에쓰오일 지분을 매각하는 등 이후 2조원 가량을 한진해운에 투입했지만 외국선사들이 수십조원 정부 지원 배경을 갖고 치킨게임 공세를 펼쳤다”며 “이 때문에 사기업으로는 경쟁에 한계 느껴 정부에 지원 협조를 요청했지만 실패했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법정관리 신청에 대해 “물류대란을 일으킨 것은 가슴 아프게 생각하지만 당시로서 최선의 결정이었다”며 “저희는 할 수 있는 최대한도 노력을 다했다. 한진해운이 현대상선 이상의 노력을 했다”고 주장했다.
한진해운에 대한 그룹 차원 지원에 대한 유감도 표명했다. 조 회장은 “인수 당시에는 한진해운에 처한 난항을 탈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자신감이 있었다”며 “지금은 인수후 2조원 계열사 지원에 대해 후회한다”고 사실상 경영 실패를 인정했다.
그는 향후 한진해운 사태 해결과 관련해 “현재 40척 이상 선박이 해상에 남아있는데 10월말까지는 대부분 (하역문제가) 해결될 걸로 예측한다”고 밝혔다.
반면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성급하게 국적 1위 선사인 한진해운을 법정관리로 몰아간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회장은 “현재 한진해운 최대 문제는 약 6500억원의 외상채무를 지고 있다는 점”이라며 “자율협약 협상 과정에서 공적자금을 투입해 6500억원에 달하는 개별회사 외상값 갚아서는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율협약 기간을 당초 8월에서 9월까지 한달간 연장했지만 한진 측 외상채무 해결책은 전혀 없었고 (법정관리행에 대한)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조 회장은 한진그룹이 미르재단 등에 10억원을 출연한 것과 관련해 “당시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으로서의 업무에 집중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며 “전결권을 가진 대한항공 사장으로부터 전국경제인연합회의 그런 제안을 받았고 재단 목적이 좋아 10억원을 투자했다는 사후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날 국감에서는 한진해운이 6월 산업은행 자금 지원을 받기 위해 신경전을 벌이던 중 법정관리를 시사하며 ‘협박’에 나섰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정무위 소속 박용진 더민주 의원은 산은으로부터 제출받은 ‘산은과 한진해운 간 공문서 수발신 목록’을 분석한 결과 한진해운이 6월 16일 산은에 단기 유동성 지원을 요청하며 이같은 방침을 통보했다.
한진해운은 공문을 통해 “단기 유동성 지원이 없으면 단기간 내에 법정관리를 신청할 수밖에 없으며 귀 은행을 비롯한 모든 채권자가 상당한 손실을 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법정관리에 들어가겠다고 시사했다.
이에 대해 국감에 출석한 석태수 한진해운 사장은 “자금사정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에 꼭 지원해달라는 취지로 작성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
박 의원은 “한진해운이 ‘대마불사’식 안일한 인식으로 대처하다가 뒤늦게 자금 조달방안을 내놓은 것이 채권은행의 지원 거절 사유가 됐을 것”이라며 “정부와 한진해운의 감정싸움 때문에 애꿎은 국민만 피해 본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고 비판했다.
[김정환 기자 / 안병준 기자 / 강영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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