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대치국면이 계속되면서 8월 임시국회의 최대 현안인 추가경정예산 처리와 ‘조선·해운업 부실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서별관 청문회)’ 개최가 표류하고 있다. 여야가 국회의장 주재로 추경처리와 청문회 개최에 합의했는데도 당리당략과 정치공세로 약속을 뒤집는 구태를 반복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여야 관계자들에 따르면 박완주 더민주 원내수석부대표는 지난 18일 저녁 김도읍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를 만나 “서별관청문회 출석증인 명단에서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전 경제부총리)과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전 경제수석)을 제외할 수 있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내놨다.
더민주가 그동안 대우조선해양 부실에 책임이 있다며 이들의 출석을 강하게 요구해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뜻밖의 제안이다. 새누리당은 현직인 유일호 경제부총리와 강석훈 청와대 경제수석을 출석시키자는 선에서 합의하자며 맞서왔다. 친박 실세인 최경환 의원 등에 대한 출석요구가 결국 정권 흔들기를 노린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청문회 개최 1주일 전 마무리 해야 하는 증인명단이 확정되지 않으면서 청문회 개최시점이 늦춰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뜻밖에 더민주의 이번 제안을 거절했다. 더민주가 조건으로 내건 연석회의 방식의 청문회를 수용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당초 여야는 서별관청문회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와 정무위원회에서 각각 실시하기로 합의했는데, 연석회의 방식이면 합동 청문회 방식으로 열리게 된다.
김도읍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연석회의로 청문회를 열면 사실상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되는 것인데 그렇게 확대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며 “상임위 별로 청문회하기로 합의해 놓고 갑자기 연석회의로 하자고 제안하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나름대로 한발 물러선 제안을 했다가 거절당한 더민주는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기동민 더민주 원내대변인은 “최경환·안종범 증인 제외는 박완주 수석이 꼬인 정국을 풀어보겠다며 지도부와 상의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제안한 것이라 당의 공식입장은 아니”라면서도 “어쨌든 청문회는 열어야 겠다는 생각에 파격적인 제안을 내놨는데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보면 청문회 개최와 추경통과 의지가 전혀 없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정국이 꼬여가면서 여야 원내지도부가 합의한 22일 추경안 통과는 이미 물건너갔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추경 심사는 19일로 사흘째 파행했다. 종합정책질의를 마치지 못해 소위원회 심사는 손도 못 댔다.
새누리당은 청문회 증인채택을 놓고 진전이 쉽지 않은 만큼 ‘선(先) 추경, 후(後) 청문회’ 합의를 이행하라며 야권을 압박하고 나섰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추경은 타이밍을 놓치면 죽지만, 청문회는 그것과 관계없이 살아있는 것”이라며 예결위 재가동을 촉구했다. 이어 “22일 추경 처리가 무산되면 (내년도) 본예산으로 돌려서 예산 편성을 다시 하는 길밖에 없다”며 ‘추경 포기’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더민주는 결국 청와대와 여당이 추경안 파행을 유도해 야당에 경제발목잡기라는 공세를 가하려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전날 양당 원내수석부대표 간 만남도 우리가 먼저 제안해서 이루어진 것”이라며 “말로만 추경 급하다고 하면서 결국 야당 탓으로 돌리려는 의도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민주 소속인 김현미 예결위원장은 “새누리당이 추경안을 철회하고 내년 예산에 반영하면 된다는 식으로 협박하고 있다”면서 “국회법에선 정부가 의제를 철회할 때 국회 동의 절차를 받게 돼 있는데 예결위에서 동의해줄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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