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메르스 추가경정예산(추경)을 지원받은 병원들이 감염병 대응과는 무관하게 병원에 상시 있어야 할 제세동기와 위·대장내시경 장비를 구매하는 등 ‘엉뚱한’ 곳에 국민 혈세를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매일경제가 1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부터 입수한 결산심사 자료에 따르면 삼성창원병원, 전주 예수병원, 경북대학교병원 등은 메르스와 연관이 없는 사업에 메르스 추경 예산을 투자했다.
삼성창원병원은 위내시경(3대)과 대장내시경(2대) 장비를 위해 13억원 중 2억 15000만원을 사용했고, 체중측정용 침대 총 7개를 구입하며 4543만원을 썼다. 김 의원은 “기관지내시경도 아니고, 심지어 이 병원에서 메르스 치료받은 환자는 딱 한 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전주 예수병원은 지원금 5억원 중 제세동기 7대를 총 5782만원에 구매했는데, 제세동기는 감염병과 무관하게 병원에 구비돼 있어야 할 물품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북대병원은 ‘비상방송솔루션 시스템’을 위해 2억 7800만원을 지출했다.
보건복지부는 ‘메르스 추경 예산 낭비’ 의혹에 대해 “모두 전문가 자문을 받은 감염관리에 필요한 65종 목록에 포함된 장비들”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당초 메르스 추경안을 마련했을 때는 지원대상 품목은 7개 뿐이었다. 예산이 손에 들어오자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위·대장내시경, 제세동기 등을 구매 가능한 명단에 추가로 올린 것이다. 전문가들이 제안한 의견은 ▲병원에서 필요로 하는 장비의 범위를 폭넓게 정하여 지원하라 ▲목록에 없어도 병원에서 필요한 장비라고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면 지원하라 등이다. 김 의원은 “의견을 낸 전문가들이 해당 병원 관련자들은 아닌가”라고 추가 의혹을 제기했다.
메르스 치료병원 29곳은 메르스 관련 병원 장비 지원 사업에 따라 지난해 각각 13억(총 377억)원의 예산을 국고로 지원받았다. 메르스 의심환자 담당 병원인 노출자 진료병원 21곳도 각각 5억(총 105억)원을 받았다. 국민 혈세가 총 500억원가량이 투입됐는데 부적절한 사용은 물론이고 아직까지 정산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병원도 있다.
경북대병원은 추경으로 지원받은 13억원 중 6억 2520만원을 ‘비상시 환자동선 파악용 CCTV’를 구매하는 데 쓰기도 했다. 경북대병원은 이 같은 내용을 원내게시판에 게재하고 “원내 전 구역에 CCTV카메라와 비상방송 스피커를 교체 및 설치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기존 장비를 ‘교체’하는 데까지 추경 예산을 사용한 것이다.
김 의원은 “병원은 진작에 CCTV를 자체적으로 설치했어야 한다”며 “병원에 비상시와 평상시가 따로 있나”라고 지적했다. 게시판에 올라온 공지에 따르면 이 병원은 ‘메르스 관련 병원장비 지원사업’이라는 명목으로 병원 주요 출입구 출입통제시스템을 설치하기도 했다.
경북대병원이 추경 예산으로 출입통제시스템을 설치했다는 지적에 대해 복지부는 “병원 자부담으로 구매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북대병원 ‘건설중인자산 명세서’에 따르면 해당 출입통제시스템 설치는 ‘메르스 지원사업’으로 명시돼 있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해당 내용을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견적서와 이체증 등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김강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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