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 나설 민주당과 공화당 후보가 사실상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로 사실상 굳어졌다. 최근 미국 현지 여론조사에서는 트럼프 후보가 클린턴 후보와의 양자 대결에서 앞서는 결과가 나오며 ‘돌풍’이 예상된다.
다만 이를 바라보는 한국 정부·정치권, 일반 시민들의 마음이 편치많은 않다. 트럼프 후보가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더 부담해야 한다”며 미군 철수 가능성마저 거론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같은 트럼프 후보의 주장은 그가 속한 공화당 내 주류적 입장과 비교해봐도 견해차가 크다. 매일경제신문은 4일 국내 대표적인 대미외교·안보 전문가들로부터 트럼프 후보의 △한국 측 주한미군 주둔비용 비중확대 요구 △미군철수 가능성 관련 발언 △한·일에 대한 핵무장 용인 시사 언급 등에 대해 한국이 세워야 할 대안을 물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후보가 미국 차기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선거 캠페인을 통해 한국에 제기하고 있는 ‘무리한’ 요구들이 상당 부분 수정·정제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다수의 미국인들이 호응하고 있는 주한미군 주둔비용에 대해서는 한국 측이 좀 더 유연하고 실용적인 자세로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중요한 것은 트럼프 자체라기보다는 이처럼 한미동맹 기반을 흔드는 이야기들이 득표에 유리하게 작용할 정도로 미국의 정치지형이 변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천 전 수석은 “한 해 30조원이 넘는 방위를 지출하는 한국으로서는 만일 트럼프 후보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좀 더 부담하는 것을 너무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밝혔다. 천 전 수석은 “트럼프 후보가 원하는 미군 주둔비용 문제에 융통성을 보여주는 대신 북한의 도발을 막을 미군 측 미사일 방어자산을 확충하는 등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는다는 관점에서 접근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외교통상부 2차관을 지낸 김성한 고려대 교수도 트럼프 후보가 향후 주한미군 주둔비 분담비중 조정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할 가능성을 높게 봤다. 다만 김 교수는 “주한미군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한국에 혜택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전략적 가치에도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다”면서 “미국이 원하는대로 분담금 문제를 다 받아주긴 힘든만큼 역으로 홍보활동이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주일미군과 비교했을때 일본은 미군이 사용하는 토지사용료를 (주둔비용 부담분에) 계산하지만 한국은 토지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면서 “이를 감안하면 한국이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미군주둔)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며 트럼프 후보 측 주요 인사들에게 이같은 ‘디테일’을 적극 설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미국인들 사이에서 ‘한국 정부가 미군 주둔을 위한 군사비 지출에 인색하다’는 생각이 있다”면서 “한국이 안보를 지나치게 미국에 의존하는 것에 대해서는 좀 반성할 면도 있다”고 말했다. 유 전 장관은 “미국 측은 한국이 지나치게 방위비 분담에 인색하다면 철수도 검토할 수 있겠지만 트럼프 후보도 대통령이 된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대해서는 천영우 전 수석 역시 “미국의 외교, 안보 정책은 의회에서 강도높은 예산 통제와 견제를 받고 있어 트럼프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정부는 물론 의회, 특히 공화당 내부를 통해서도 트럼프의 거친 주장들이 다듬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문가들 가운데에서는 한반도 정책과 관련해 ‘막말’에 가까운 언사들을 멈추지 않는 트럼프 후보에 대한 거부감을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통일연구원장을 역임한 김태우 교수는 트럼프 후보가 ‘동맹국의 부담을 키우고 여의치 않다면 알아서 방어하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이를 그대로 해석하면 미국이 세계 지도국의 위치를 포기하는 것인데 미국 내에서도 이런 주장은 용인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트럼프 후보는 한미 군에 대해 이해가 짧다”며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 두 축인 한·미, 미·일 동맹축을 흔드는 매우 비현실적 주장”이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트럼프가 후보가 한·일 양국의 핵무장을 용인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선거 캠페인 도중 현실적인 맥락없이 나온 이야기를 두고 핵 도미노 현상을 우려하는 등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구본학 한림대 교수는 “(트럼프의 한·일 핵무장 발언은) 미국 주도의 NPT(핵확산금지협약) 체제가 미국에 어떤 국가이익인지 잘 모르고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구 교수는 “이 체제를 와해시키면 국제관계의 새판을 짜고 미국이 스스로 패권을 내놓아야 할 수 있는 상황이 되는 만큼 대통령이 되더라도 (발언을) 수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태우 교수도 트럼프 후보의 발언에 대해 “(한·일이) 핵무장을 하든지 말든지 스스로 지키라는 발언은 굉장히 무책임하고 북한을 나쁜 쪽으로 자극할 수 있는 언급”이라며 “한국인들에게도 큰 충격이 될 수 있는 발언을 트럼프 후보가 실행에 옮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안두원 기자 / 김성훈 기자 / 박의명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