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정국의 마지막 뇌관인 유승민 의원의 거취를 놓고 이한구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이 끝까지 ‘벼랑끝 전술’을 펼쳤다.
새누리당은 결국 유 의원에게 공천을 주지도, 공천에서 배제하지도 않은 채 한국 정당 사상 전례없는 ‘무공천’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은 23일 유 의원을 향해 불출마 선언을 사실상 종용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당에서 받은 혜택과 본인의 미래, 대통령과의 관계를 생각해 본인 스스로 본인 결정하는 게 도리일 것”이라고 압박 수위를 높였다.
여당 텃밭인 대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배려로 3선을 했다는 점, 그리고 유 의원의 정치적 재기를 위해 스스로 ‘백의종군’을 선언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해석된다. 총선 후보자 등록이 시작되는 24일부터는 당적을 바꿀 수 없다. 따라서 이 위원장은 이 점을 이용해 마지막 날까지 공천 여부를 결정하지 않음으로써 유 의원 스스로 당 잔류냐, 아니면 제발로 걸어나가느냐 양자택일하도록 만드는 ‘고사(枯死) 작전’을 편 것이다.
전날 회의에서도 이 위원장은 “그 동안 공관위는 만장일치 합의로 공천을 결정해왔다”며 “유 의원 문제만 투표로 결정할 수는 없다”고 결정을 보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제는 비박계 기류도 비슷해졌다. 친김무성계로 분류되는 홍문표 새누리당 1사무부총장은 이날 “본인이 (거취를)결정해야 한다”고 이 위원장과 동일한 스탠스를 취했다. 홍 부총장은 유 의원의 공천심사 보류와 관련해 “한 번도 이 문제를 공관위원들이 깊이 논의한 바 없다”고 덧붙였다.
국민 여론이 가장 주목하는 문제에 대해 제대로 논의조차 하지 않은채 시간끌기만 해왔다는 것을 공관위 스스로 자인하는 발언이다.
새누리당 최고위원들도 이날 오전 9시부터 회의를 열고 재의 요청이 들어온 이재오 의원 지역구(서울 은평을) 등 5곳과 유승민 의원 거취 문제 등을 논의했다.
2시간 30분 만에 정회된 오전 최고위에서 성남 분당을에는 권혁세 후보를 공천하기로 확정된 반면 서울 은평을(유재길), 서울 송파을(유영하), 대구 동구갑(정종섭), 대구 달성군(추경호) 등은 공관위에 재의가 요구됐다. 그러나 최고위원회의 참석자들은 유 의원 거취에 대해선 “아직 논의가 안됐다”면서 “오늘 중에 결론이 날 것”이라고만 전했다.
김무성 대표는 회의에서 유승민 의원 공천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다른 친박계 최고위원들이 강하게 반대했다. 결국 김 대표는 뾰족한 해법이 없는 진퇴양난 상황이다. 무엇보다 유 의원의 정치적 생명줄을 끊는 ‘악역’은 이한구 위원장 등 친박계가 맡아야 한다는 게 김 대표 생각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야 유 의원 공천배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친박계가 주도한 정치적 학살이었다고 주장할 명분이라도 남게 된다.
아울러 새누리당이 수도권에서 패배할 경우에도 친박계의 무리수가 패인이라고 항변할 수 있게 된다.
유 의원이 칩거 중인 대구 분위기는 이날 오전부터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선거 사무실은 차분한 편이었지만 한때 유 의원이 탈당 기자회견을 열 것이란 소문이 급속도로 퍼지기도 했다. 하지만 유 의원 측은 이날도 “당의 결정이 선행돼야 입장을 밝힐 수 있다”고 전했다.
유 의원 측근으로 앞서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조해진 의원은 “최고위원회나 공관위나 서로 부담 떠넘기를 계속하는 무책임한 행동을 계속하고 있다”면서 “마지막까지 비겁한 모습을 보일지 지켜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신헌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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