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대표직 사퇴까지 언급하는 ‘벼랑끝 전술’을 구사한 것은 향후 당내 역학 관계를 고려한 전략적 포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는 22일 자택을 나서며 기자들과 만나 “내가 여태까지 내 스스로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산사람인데그런 식으로 날 욕보게 하는 그런 거는 내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자신의 비례대표 공천에 대해 “노욕을 부린다”는 일부 평가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한 셈이다. 그러나 실제로 사퇴를 강행하기 보다는 향후 당 장악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 강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1월 중순 선대위원장으로 더민주에 들어 온 김 전 대표는 일부 공천 탈락자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당을 무난하게 이끌어 왔다. 외부 영입인사로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빠른 속도로 당을 장악한 데 대해 당내외의 호평을 받았다. 더민주의 한 의원은 “김 대표가 온 이후 당이 빠르게 안정됐다”면서 “김 대표의 리더십이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대표가 당을 안정화시킨 핵심 요인은 바로 공천권에 있었다. 공식적으로 공천관리위원회라는 공천 기구가 있지만 김 대표의 실질적 영향력이 가장 크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본인의 공천 여부가 달려있는 대다수 당내 인사들이 공개적으로 김 대표에게 반기를 들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실제 공천 국면에서 김 대표에 대한 공개 반발이 당내에서 나온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지역구 공천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당내 인사들이 더이상 김 대표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진 것이다. 공천탈락이 확정된 정청래 의원은 “비례대표 공천을 처음부터 다시 하라”고 요구했고 김광진 의원은 김 대표의 비례 2번 공천에 대해“상식과 정의에 맞지 않는다”며 반기를 들었다.
비례대표 문제는 한가지 사례에 불과할 뿐 이같은 상황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향후 총선 국면은 물론 총선 이후 김 대표의 리더십이 제대로 발휘되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될 수 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왔다.
김 대표가 결국 ‘대표직 사퇴 암시’라는 극약 처방을 통해 당내 기강을 확실히 바로잡을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김 대표와 가까운 홍창선 공관위원장이 비례대표 공천 파동에 대해 “자기네 세력 과시용으로 보내는 하나의 메시지 정도로 보이며 총선 후 모습을 볼 수 있는 한 단면이 아닌가 한다”고 언급한 것도 김 대표 측의 이같은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가 ‘벼량끝 전술’을 통해 자신의 비례대표 전략공천권을 일부 보장받고 이 과정에서 문재인 전 대표가 “김 대표가 계속 맡아야 한다”면서 예우를 갖추는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향후 당을 장악해 나갈 수 있는 추동력을 확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단 김 대표가 22일 중앙위원회가 의결한 비례대표 후보 추천안을 반대할 가능성은 높지 않은 상황이다. 김 대표는 22일 오후 자택을 나서며 “중앙위 결정 사항은 당헌대로 했다고 하니까 그 결과에 대해 알아서 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특별히 논평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가 대표직을 유지하더라도 중앙위 결정을 번복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 대목이다. 그러나 비례대표 공천안은 대표의 옥쇄를 찍는 형식적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김 대표가 마지막까지 비토할 수 있는 권한은 남아 있다.
만약 김 대표가 대표직을 사퇴할 경우 비대위 대표직을 누가 이어받을 지 여부도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정장선 총선기획단장은 “비대위원은 서열이 없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누가 승계해야하는 지 정해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비대위원 가운데 일정한 영향력이 있는 박영선 의원이나 이종걸 원내대표가 맡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밖에 과거 비대위를 무난히 이끌어온 문희상 비대위원장도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반면 이들이 모두 수도권에 지역구를 두고 있어 본인의 선거가 중요한 만큼 원외 인사 가운데 중량급 인물이 인선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전 대표나 정세균 의원 등 당내 지도자급 인사들이 직접 비대위를 이끌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다.
[박승철 기자 / 정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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