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 베이징 톈안먼에서 과시한 ‘한중 밀월’은 6개월도 안돼 취약한 밑천을 드러내고 말았다. 당시 미국과 일본이 불참한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의 전승 70주년 기념 열병식을 참관하자 양국에선 한중관계가 ‘수교 이후 최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지난달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이달초 장거리 미사일 발사는 한반도를 다시 냉전구조로 돌려놓고, 한중관계의 ‘거품’을 걷어내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공식석상에서 한마디 언급도 내놓지 않고, 박 대통령과의 통화도 핵실험 한달이 지난 뒤에야 응했다. 중국 정부는 대북 영향력 행사를 거부한 채 유엔을 통한 제한된 대북제재만 고수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흥규 아주대 교수는 “(양국이) 전략적 목표는 물론이고 서로에 대해 어떤 관계를 지향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결과”라며 “한중관계가 밀월관계였다고 하는데 단순히 양국 지도자의 개인적 차원에서 더이상 진전되지 못한게 아쉽다”고 말했다.
중국으로부터 기대한만큼 협조를 얻지 못한 한국은 북한 비핵화의 무게중심을 한미동맹으로 옮겨 한반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도입 공론화에 나섰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하던 전략을 북한과 중국이 강요해 포기한 셈이다. 하지만 중국은 북한 비핵화 해법은 제쳐두고 한반도 사드 배치 논의에만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23일 주한중국대사의 “한중관계 파괴” 발언은 적반하장의 결정판이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한중 관계는 ‘전략적 협력이 결여된’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라는 자조적인 평가도 나온다.
문제는 사드 배치를 비롯한 비핵화 해법을 두고 한중간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동북아에서 신냉전 구조가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한중관계 파열을 감수하고 강경론을 쏟아내는 배경에는 미국과의 패권다툼이 있다. 미국이 일본은 물론 호주 필리핀까지 끌어들여 남중국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에 대해 중국은 미국의 중국에 대한 포위전략으로 인식하고 있다. 한반도 사드 배치에 대해 “북한을 핑계로 중국의 안보이익을 침해하려는 의도”라고 반발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사드 배치 논의가 북핵으로부터 안보를 지키기 위한 결정이라며 타협 불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추궈홍 주한중국대사의 협박성 발언에 대해서도 외교부는 “국가 안보와 국민의 안위와 관련된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 문제를 제기하려면 그러한 문제가 왜 발생했는지, 근원부터 살펴보는 것이 순리일 것”이라고 반박했다. 여당인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도 24일 “중국은 한반도는 물론 (미국) 알래스카까지 탐지할 수 있는 초대형 레이더를 운용하고 있는데, 자국 안보는 중요하고 다른 나라 안보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냐”고 성토했다.
한국에 대한 중국내 여론도 한반도 사드 배치 논의 이후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중국 최대 SNS인 웨이신에서는 “한국이 미국과 함께 사드를 배치하고 조선(북한)과 전쟁을 치른다면 중국을 적대시하겠다는 의미다”, “북한을 핑계로 미국이 중국을 위협하는 무기를 들여오지말라” 등의 글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한중관계 냉각과 한반도 신냉전 우려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중 양국이 대화를 통해 북한 비핵화에 초점을 맞출 것을 충고한다. 외교부 차관을 지낸 김성한 고려대 교수는 “우리의 안보 위협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중국이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면서도 “양국이 북핵 문제에 초점을 두고 힘을 모으다보면 극적인 돌파구가 생기고 사드 문제도 예상치 못한 방향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상하이 사회과학원 리카이셩 교수도 본지와 통화에서 “한국은 중국의 안보이익 침해 우려를 고려해 (대북정책을) 비핵화에 국한해야 하고, 중국도 한국의 북핵위협을 덜어주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베이징 = 박만원 특파원 / 서울 = 김성훈 기자 / 노승환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