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일방적 여야 합의 파기에 대한 후폭풍이 거세다.
“야당을 변화시키겠다”며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영입된 김종인 위원장이 오히려 전통적 운동권 방식의 ‘벼랑끝’투쟁전략을 답습하자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비등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같은 분위기 속에서도 1일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원장은 “선거법을 먼저 처리해야 원샷법(기업활력제고를 위한 특별법) 통과가 가능하다”면서 한치도 물러나지 않은 입장을 고수하며 ‘마이웨이’를 선언했다.
◆ 야, “삼성특혜법” 왜곡된 시각 고수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 회의에 참석해 “(선거법이) 마치 야당이 추구하는 법인양 방관하는 실정”이라면서 “선거법은 쟁점법안이 아니라 국회가 당연히 처리해야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국민이 여러 가지 어려움에 봉착해 있는데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 마치 기업이 원하는 법이 통과 안 됐다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표면적으로 “원샷법 처리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고 밝히고 있지만 ‘원샷법’의 실제 내용에 대해 찬성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박영선 전 원내대표가 “원샷법은 지주회사 체제를 만들기 위한 삼성 특혜법으로, 구조조정이라는 미명 아래 편법 승계하면서 세금을 덜 내는 대표적인 금수저를 위한 법”이라고 주장한 뒤 김 위원장의 ‘원샷법 처리’합의 파기가 나왔다는 점에서 실체가 없는 ‘삼성 특혜론’의 영향을 받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삼성의 원샷법 활용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권종호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은 “삼성이 원샷법으로 경영권을 편법 승계한다면 국내외에서 엄청난 반발과 분노에 부딪힐 게 뻔해 행동으로 옮길 수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진영의 대표적 경제학자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도 “(원샷법에 따라)삼성전자와 삼성SDS를 주주총회 없이 이사회 결의만으로 ‘소규모합병’이 성사되더라도 승계에는 큰 도움이 안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더불어민주당에 대해 “진영 내부에서만 통용되는 ‘안전한 답’으로는 선거에서 이길 수도 없고, 삼성을 개혁할 수도 없다”고 일갈했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이같은 학계의 지적에 대해 전혀 반응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샤오미에 추격받는 삼성을 도와줘야”한다면서 ‘원샷법’에 대한 전향적 입장을 천명했고 이는 지난달 29일 ‘원샷법 처리’에 대한 여야 합의로 이어졌다. ‘원샷법’소관 상임위인 산업통상자원위원회의 더민주 간사인 홍영표 의원도“독소 조항을 제거하고 제동 장치를 많이 마련했다”며 “삼성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동안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던 더민주 의원들 조차 현실을 인정하고 본회의 처리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김종인 위원장이 오히려 “기업이 원하는 법”이라며 ‘강경 노선’을 천명한 것이다.
◆ 여, 정 의장 직권상정 압박 강화
여당은 합의를 깬 야당을 연이어 성토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경제전문가로 자처하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법 하나로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다’라고 이야기 하면서 국민들이 바라는 경제문제는 외면한 채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를 허언의 장, 거짓말의 산실로 만들어버렸다”며 “다양한 국정경험과 정치역정에서 쌓은 경륜은 사라지고 더불어민주당의 DNA인 흑백논리, 외눈박이 사고, 운동권식 정치의 핵심만 받아들인 것 같아서 안타깝기 짝이 없다”고 비판했다.
원샷법 통과를 움직임도 이어갔다.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고 원샷법을 가결시켰다. 그러나 이를 본회의에 상정하려면 여야 합의가 필요해 김 위원장이 ‘마이웨이’를 계속하는 한 본회의에서 처리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따라 김무성 대표와 원유철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정 의장을 찾아 직권상정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또 노동개혁 등 다른 법안에 대해서도 선거구획정과 일괄 타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원 원내대표는 또 정 의장과 면담한 뒤 “‘기간제법은 저희가 양보를 했으니 파견제법은 야당이 수용할 수 있도록 의장님께서 야당을 설득하셔야 된다’고 말씀드렸다”고 밝혔다. 정의화 국회의장과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대위원장·이종걸 원내대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원유철 원내대표는일단 2일 오후 국회에서 회동을 열고 다시 입장조율을 할 방침이다.
◆ 국민의당, 캐스팅보트 역할 하나?
‘캐스팅보트’ 역할을 맡은 국민의당도 더민주와는 다른 입장을 천명해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의 연대로 ‘원샷법’이 본회의에서 처리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더민주가 김종인 위원장의 ‘강경 노선’의 덫에 걸린 가운데 주승용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국회선진화법상 의결 정족수 요건에 대한 전향적 입장을 내놨다. 주 원내대표는 “국민의당 17석에 최재천·박지원 의원을 합하면 19석이 된다”면서 “새누리당 157석과 합치면 176석으로 재적의원 5분의3 이상 요건을 충족시키며 국회선진화법상 가결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법에 따르면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서명한 요구서를 의장에게 제출할 경우 무제한토론이 가능해 본회의에서 합법적으로 법안통과를 가로막을 수 있다. 무제한토론 종결을 위해선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종결동의서를 내고 24시간이 경과한 후에 무기명투표로 표결하되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국민의 당은 더민주가 무제한 토론을 통해 법안 통과 저지에 나서더라도 새누리당과 연계해 법안을 처리함으로써 더민주와 차별화를 시도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박승철 기자 / 우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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