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중심제인 우리나라에서 청와대와 여당은 한 식구나 마찬가지입니다.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겸하고, 당 사무총장을 수시로 불러 비자금으로 마련한 통치자금을 하사했을 때는 더더욱 그랬습니다.
어찌 보면 여당이라는 존재는 대통령이 시키는 일을 국회에서 몸으로 밀어붙이는 행동대장 역할에 머물렀던 것 같습니다.
지금이야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청와대와 당은 상하 관계처럼 비칠 때가 잦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힘이 빠지고, 인기가 떨어지면 이 관계가 순식간에 뒤바뀝니다.
당이 우위에 서고, 청와대가 당의 눈치를 보는 형국이 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했던 열린우리당이 그랬고,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 비리를 야당보다 더 비판했던 새누리당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출범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는 박근혜 정부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힘이 가장 세고, 청와대가 당을 압도하는 이 시기에 새누리당 내에서 묘한 기류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상일 새누리당 대변인의 논평을 들어볼까요?
▶ 인터뷰 : 이상일 / 새누리당 대변인(3월25일)
- "자고 일어나면 사퇴하는 이들이 줄줄이 늘어나는 것을 지켜보는 여당은 당혹감과 자괴감을 금할 수 없습니다. 도대체 인사검증을 어떻게 했기에 이런 일이 잇달아 발생하는지 청와대는 반성해야 합니다. 청와대는 점검을 허술하게 하고 잘못된 것을 즉각 시정해야 합니다. 인사검증 시스템을 강화하는 방안을 찾고 부실검증 책임이 있는 관계자를 문책해야 합니다."
박근혜 정부 출범 한 달 축하 논평을 내야 할 여당 대변인의 입에서 이게 무슨 소리일까요?
청와대가 반성하고 검증 책임자를 문책하라니요?
흡사 야당이 낼 법한 소리가 여당 내에서 나온 셈입니다.
너무 뜻밖이라 이런 목소리가 그냥 몇몇 의원들의 소수 목소리인지 대표적 친박계 의원인 김재원 의원에게 물어봤습니다.
▶ 인터뷰 : 김재원 / 새누리당 의원(3월26일 시사마이크)
- "(앵커)이상일 대변인의 논평이 지금 새누리당 내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봐도 됩니까? 아니면 대변인이 너무 과하게 나간 것이라고 봐야 합니까?
(김재원 의원) 같은 시간에 사무총장께서도 비슷한 얘기를 했거든요. 당내의 우려와 걱정을 대변인이 역시 대변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5선인 남경필 의원 역시 '우선 대통령이 직접 인사를 하고 위에서 내려주는 방식이 첫 번째 문제이고, 검증팀의 무능은 둘째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조해진 의원은 '야당 의원이 입수할 수 있는 정보를 어떻게 청와대가 입수를 못 한 것인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도 했습니다.
사퇴한 한만수 전 공정위원장 후보자의 해외계좌 얘기를 빗대어 한 말인 것 같습니다.
주식백지신탁 문제로 자진사퇴한 황철주 중소기업청장내정자 역사 청와대 인사팀의 충분한 설명이 없었음을 에둘러 표현했습니다.
단독 인터뷰한 얘기를 잠깐 들어보시죠.
▶ 인터뷰 : 황철주 / 전 중기청장 내정자(3월27일)
- "그쪽(청와대)에서도 1개월 내에 매각, 백지신탁을 알고 있느냐 그래서 이런데 할거냐. 그것은 충분히 서로 이해할거라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쪽도 제가 이해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저는 그 정도까지만 이해했고. 그냥 말 뜻으로만 이해했어요."
자고 나면 낙마자가 생기는 일들이 우연한 일치라고 하기에는 뭔가 찜찜한 구석이 남습니다.
어쨌든 새누리당 내에서조차 책임론이 나오고 있지만, 청와대는 그럴 필요까지야 없다는 견해입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인사 검증과정에서 아직 확인하지 못하고 소홀했던 실수가 있었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로 민정수석 문책이나 인사위원회 변화,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조각과 개각은 좀 다르게 봐줘야 하지 않냐? 어떤 정부든 출범 초기엔 많은 사람을 검증하다 보니 실수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정부조직법 처리가 지연되면서 청와대 인사팀과 검증팀에 과부하가 걸린 면도 분명히 있습니다.
짧은 시간에 많은 후보자를 검증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실수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청와대 관계자 말처럼 '일을 하다 보면 접시를 깰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접시를 자주 깨면 어떻게 될까요?
일반 식당에서도 접시를 자주 깨면 그 종업원은 해고당할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남은 정부 산하기관·공기업 인사에서 또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요?
청와대는 정말 멘붕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5일 곽상도 민정수석에게 임명장을 줬습니다.
현재 검증팀을 신뢰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대통령의 뜻이 이러하니 당으로서도 더는 책임론을 밀어붙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번 일을 계기로 새누리당내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박근혜 정부에 당이 할 말은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자리 잡았을 법합니다.
불과 한 달 만에 말입니다.
오는 30일에는 새 정부 출범 후 첫 고위 당·정·청 회의가 열립니다.
황우여 대표와 이한구 원내대표, 정홍원 국무총리와 현오석 경제부총리,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과 일부 수석이 참석한다고 합니다.
난상토론 식으로 진행할 것이라는 말도 들립니다.
역대 정권에서 그랬듯 당과 정부가 청와대 지시 사항을 받아 적는 자리가 될지, 아니면 당이 할 말은 하는 자리가 될지 궁금해집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신민희 PD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겸하고, 당 사무총장을 수시로 불러 비자금으로 마련한 통치자금을 하사했을 때는 더더욱 그랬습니다.
어찌 보면 여당이라는 존재는 대통령이 시키는 일을 국회에서 몸으로 밀어붙이는 행동대장 역할에 머물렀던 것 같습니다.
지금이야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청와대와 당은 상하 관계처럼 비칠 때가 잦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힘이 빠지고, 인기가 떨어지면 이 관계가 순식간에 뒤바뀝니다.
당이 우위에 서고, 청와대가 당의 눈치를 보는 형국이 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했던 열린우리당이 그랬고,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 비리를 야당보다 더 비판했던 새누리당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출범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는 박근혜 정부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힘이 가장 세고, 청와대가 당을 압도하는 이 시기에 새누리당 내에서 묘한 기류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상일 새누리당 대변인의 논평을 들어볼까요?
▶ 인터뷰 : 이상일 / 새누리당 대변인(3월25일)
- "자고 일어나면 사퇴하는 이들이 줄줄이 늘어나는 것을 지켜보는 여당은 당혹감과 자괴감을 금할 수 없습니다. 도대체 인사검증을 어떻게 했기에 이런 일이 잇달아 발생하는지 청와대는 반성해야 합니다. 청와대는 점검을 허술하게 하고 잘못된 것을 즉각 시정해야 합니다. 인사검증 시스템을 강화하는 방안을 찾고 부실검증 책임이 있는 관계자를 문책해야 합니다."
박근혜 정부 출범 한 달 축하 논평을 내야 할 여당 대변인의 입에서 이게 무슨 소리일까요?
청와대가 반성하고 검증 책임자를 문책하라니요?
흡사 야당이 낼 법한 소리가 여당 내에서 나온 셈입니다.
너무 뜻밖이라 이런 목소리가 그냥 몇몇 의원들의 소수 목소리인지 대표적 친박계 의원인 김재원 의원에게 물어봤습니다.
▶ 인터뷰 : 김재원 / 새누리당 의원(3월26일 시사마이크)
- "(앵커)이상일 대변인의 논평이 지금 새누리당 내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봐도 됩니까? 아니면 대변인이 너무 과하게 나간 것이라고 봐야 합니까?
(김재원 의원) 같은 시간에 사무총장께서도 비슷한 얘기를 했거든요. 당내의 우려와 걱정을 대변인이 역시 대변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5선인 남경필 의원 역시 '우선 대통령이 직접 인사를 하고 위에서 내려주는 방식이 첫 번째 문제이고, 검증팀의 무능은 둘째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조해진 의원은 '야당 의원이 입수할 수 있는 정보를 어떻게 청와대가 입수를 못 한 것인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도 했습니다.
사퇴한 한만수 전 공정위원장 후보자의 해외계좌 얘기를 빗대어 한 말인 것 같습니다.
주식백지신탁 문제로 자진사퇴한 황철주 중소기업청장내정자 역사 청와대 인사팀의 충분한 설명이 없었음을 에둘러 표현했습니다.
단독 인터뷰한 얘기를 잠깐 들어보시죠.
▶ 인터뷰 : 황철주 / 전 중기청장 내정자(3월27일)
- "그쪽(청와대)에서도 1개월 내에 매각, 백지신탁을 알고 있느냐 그래서 이런데 할거냐. 그것은 충분히 서로 이해할거라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쪽도 제가 이해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저는 그 정도까지만 이해했고. 그냥 말 뜻으로만 이해했어요."
자고 나면 낙마자가 생기는 일들이 우연한 일치라고 하기에는 뭔가 찜찜한 구석이 남습니다.
어쨌든 새누리당 내에서조차 책임론이 나오고 있지만, 청와대는 그럴 필요까지야 없다는 견해입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인사 검증과정에서 아직 확인하지 못하고 소홀했던 실수가 있었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로 민정수석 문책이나 인사위원회 변화,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조각과 개각은 좀 다르게 봐줘야 하지 않냐? 어떤 정부든 출범 초기엔 많은 사람을 검증하다 보니 실수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정부조직법 처리가 지연되면서 청와대 인사팀과 검증팀에 과부하가 걸린 면도 분명히 있습니다.
짧은 시간에 많은 후보자를 검증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실수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청와대 관계자 말처럼 '일을 하다 보면 접시를 깰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접시를 자주 깨면 어떻게 될까요?
일반 식당에서도 접시를 자주 깨면 그 종업원은 해고당할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남은 정부 산하기관·공기업 인사에서 또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요?
청와대는 정말 멘붕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5일 곽상도 민정수석에게 임명장을 줬습니다.
현재 검증팀을 신뢰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대통령의 뜻이 이러하니 당으로서도 더는 책임론을 밀어붙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번 일을 계기로 새누리당내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박근혜 정부에 당이 할 말은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자리 잡았을 법합니다.
불과 한 달 만에 말입니다.
오는 30일에는 새 정부 출범 후 첫 고위 당·정·청 회의가 열립니다.
황우여 대표와 이한구 원내대표, 정홍원 국무총리와 현오석 경제부총리,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과 일부 수석이 참석한다고 합니다.
난상토론 식으로 진행할 것이라는 말도 들립니다.
역대 정권에서 그랬듯 당과 정부가 청와대 지시 사항을 받아 적는 자리가 될지, 아니면 당이 할 말은 하는 자리가 될지 궁금해집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신민희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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