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 】
1950년 겨울 함경남도 장진호.
얼어 죽은 군인들의 시신이 곳곳에 널려 있습니다.
살아 남은 병사들은 죽은 전우를 제대로 묻어주지도 못하고 눈물의 퇴각 결정을 내립니다.
초반 열세를 극복하고 북진에 성공한 UN군이 산 속에 숨어있던 중공군에 포위당했기 때문입니다.
2주 만에 가까스로 빠져나왔지만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미 7사단 사망자만 무려 2천 5백여 명.
미국 하와이에 본부를 둔 JPAC, 합동전쟁포로실종자 사령부는 장진호에 묻힌 전우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은 1988년부터 북한 지역 유해 발굴을 위해 북 측과 30여 차례의 회담을 했습니다.
1996년부터 시작된 발굴은 2005년까지 계속됐습니다.
발굴 댓가로 북한에 지불한 돈만 2천800만 달러, 우리 돈 330억원입니다.
장진호를 포함한 북한 지역에서 모두 225구의 유해가 발굴됐습니다.
우리나라도 북한 지역 유해발굴을 위해 노력했지만 번번이 무산됐습니다.
▶ 인터뷰 : 박신한 / 국방부 유해발굴단장
-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에 있는 국군 전사자에 대해서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항상 그분들을 잊지 않고 여건만 되면 언제든지 발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6.25전쟁 당시 국군 사망자는 13만 7천명.
이 중 국군 전사자 유해 유해 3만여 구가 아직도 차디찬 북한 땅 속에서 고국으로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MBN뉴스 정성기입니다.
1950년 겨울 함경남도 장진호.
얼어 죽은 군인들의 시신이 곳곳에 널려 있습니다.
살아 남은 병사들은 죽은 전우를 제대로 묻어주지도 못하고 눈물의 퇴각 결정을 내립니다.
초반 열세를 극복하고 북진에 성공한 UN군이 산 속에 숨어있던 중공군에 포위당했기 때문입니다.
2주 만에 가까스로 빠져나왔지만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미 7사단 사망자만 무려 2천 5백여 명.
미국 하와이에 본부를 둔 JPAC, 합동전쟁포로실종자 사령부는 장진호에 묻힌 전우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은 1988년부터 북한 지역 유해 발굴을 위해 북 측과 30여 차례의 회담을 했습니다.
1996년부터 시작된 발굴은 2005년까지 계속됐습니다.
발굴 댓가로 북한에 지불한 돈만 2천800만 달러, 우리 돈 330억원입니다.
장진호를 포함한 북한 지역에서 모두 225구의 유해가 발굴됐습니다.
우리나라도 북한 지역 유해발굴을 위해 노력했지만 번번이 무산됐습니다.
▶ 인터뷰 : 박신한 / 국방부 유해발굴단장
-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에 있는 국군 전사자에 대해서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항상 그분들을 잊지 않고 여건만 되면 언제든지 발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6.25전쟁 당시 국군 사망자는 13만 7천명.
이 중 국군 전사자 유해 유해 3만여 구가 아직도 차디찬 북한 땅 속에서 고국으로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MBN뉴스 정성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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