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표된 한 부동산 정보제공 업체의 전세가격 관련 자료가 제 눈길을 끌었습니다. 지난 달 서울 아파트의 3.3㎡ 평균 전세가격이 두 달 전인 1월보다 4.7% 떨어졌는데, 누구나 살고 싶어 한다는 강남구의 전세가격이 가장 크게 하락해, 1위 자리를 서초구에 내줬다는 겁니다.
대한민국 부촌 1번지 압구정동, 교육 1번가 대치동, 빌딩숲이 즐비한 테헤란로, 삼성동, 도곡동, 개포동 등 고가아파트가 즐비한 최고의 부자동네 강남구가 매매가 아닌 전세라고 해도 1위 자리에서 내려오다니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네요. 서초구도 부자동네이긴 하지만, 강남구 집 가진 분들 약간 기분이 씁쓸할 것 같습니다.
강남구는 왜 전세가격 1위 자리를 뺏겼을까요? 개포동에 있는 한 신축 아파트에 그 비밀이 있습니다. 개포주공 4단지를 재건축한 개포자이 프레지던스가 지난 2월28일부터 입주에 들어갔는데, 물량이 3,375가구에 달했던 것입니다. 소유주들이 임차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받아 분양 잔금을 치르려고 내놓은 전세물건이 지난 2월3일 기준 무려 1,353건이나 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세대출 금리가 급등하면서 수요는 크게 줄었고, 2월 기준 전용 59㎡ 시세가 7억 원대까지 급락했습니다. 처음 호가가 13억 원이었던 걸 감안하면 절반 밖에 안 됩니다.
가장 새로 지은, 그것도 대단지 아파트의 전세가격이 급락하는데 인근 아파트들이 버틸 수 있었을까요? 디에이치자이개포(구 개포8단지) 전용 103㎡는 지난달 13억 원(20층)에 전세 계약을 맺었는데, 2021년 12월에는 21억 원대였습니다. 래미안블레스티지(구 개포2단지) 전용 84㎡ 역시 10~11억 원 대에서 거래가 됐는데, 작년 1월 최고가 17억2,500만원(1층) 대비 40% 이상 낮아진 금액입니다. 강남구는 이 여파로 3.3㎡ 평균 전세가격이 1월 3,701만 원에서 3월 3,411만 원으로 7.8%나 낮아졌고, 인근이지만 그래도 직접적인 영향은 덜 받은 서초구(-4.7%)에 1위 자리를 내준 겁니다.
입주 아파트는 전세가격이 왜 급락하는 걸까요? 집주인들이 잔금을 납부해야 하는 기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 2~3달인데, 이 기간이 지나면 연체료를 내야 합니다. 연 5~6%에서 시작해 시간이 갈수록 금리가 높아집니다. 미납 기간이 길어지면 2~3차례에 걸쳐 납부 촉구서를 받고, 이후 최고장, 그럼에도 잔금을 못 내면 계약해지 절차에 들어갑니다. 시간이 갈수록 소유자들은 잔금 미납에 심한 압박을 느껴, 전세금을 크게 낮추더라도 일단 임차를 맞춰 보증금을 받고 가진 돈을 보태 어떻게든 잔금을 납부하려 하죠. 일반 아파트는 전세금을 늦게 돌려줘도 소유권을 뺏기는 일은 없지만, 신축 아파트는 계약 해지를 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입니다. 개포동에선 내년 초에도 주공 1단지를 재건축한 6,702세대 매머드 아파트 입주가 예정돼 있어, 강남구 아파트들의 전세 약세는 한동안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직장이나 아이 교육을 위해 강남 쪽으로 이사는 가야 하는데, 자금이 부족해서 고민인 분들은 이런 대단지 입주아파트 전세를 노려볼만 합니다. 집주인이 들어와서 살겠다고 하지 않으면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해 적어도 4년은 살 수 있고, 법 개정을 거쳐 아파트 등록임대 제도가 부활되면 조건만 맞으면 2년에 5% 아래로만 전세금을 올려주면서 장기간 거주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부동산 핵심클릭이었습니다.
강남권 입주 예정 주요 아파트
[ 김경기 기자 goldgame@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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