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에 3000억원을 물어주라고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가 31일 판정했다고 하니, 론스타 처리에 개입한 공무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적이 여당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이 일의 근원적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말이다.
론스타에 3000억원을 물어주게 된 직접적 이유는 정부가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 승인을 지연한 데 있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하나금융에 팔기로 하고 계약을 맺은 게 2010년 11월이다. 그러나 정부 승인이 난 건 1년이 더 지난 2012년 1월이었다. 승인이 장기간 지연된 건 사실이다. ISCID는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 가격을 낮출 때까지 인수 승인을 늦춘 것"이라면서 "이는 공정하고 공평하게 외국인 투자자를 대우할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했다. 이로 인해 낮아진 매각 가격 4억 3300만 달러의 절반인 2억 1650만 달러(2800억 원)와 지연이자 185억 원을 한국 정부가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했다.
승인을 지연한 건 정부 관료라는 점에서 그들에게 책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왜 공무원들이 승인을 지연하게 됐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그건 바로 론스타가 외환은행 지분을 매각해 큰돈을 챙기는 것을 "먹튀"라고 계속 비판한 정치권과 일부 시민단체의 지속적인 압박 때문이었다. 이들은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헐값으로 매각해 론스타가 수조 원의 이익을 챙기게 됐다고 주장했다. 결국 론스타 매각을 결정한 정부 공직자들은 검찰 수사를 받게 됐고 기소까지 됐다. 결국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공직자로서 이력은 끝이 나고 말았다.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 승인을 지연시킨 공무원들도 이런 과정을 잘 알았다. 론스타가 하나금융에 외환은행을 매각해 그 차익과 배당금으로 얻은 4조원 이상의 돈을 들고 외국으로 떠났다는 '먹튀' 논란에 휩싸일 경우의 여파도 잘 알았다. 그래서 매각 가격을 조금이라도 낮춰 논란을 줄이고자 했던 것이다. 실제로 ISCID에 따르면 승인 지연 탓에 매각 가격이 5600억원 인하됐다고 한다. 3000억원을 배상하더라도 2600억원은 국가적으로 이득이 된 셈이다.
이 같은 사정을 감안할 때 이번 배상의 원죄가 공직자들에게 있는지 한 번은 생각해 봐야 한다. 물론 공직자는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무엇이 국익인지 최선을 다해 판단하고 결정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공무원도 인간이다.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 수사에서 보았듯이, 그 결정의 책임으로 검찰 수사와 재판까지 받아야 한다는 게 입증된 상황에서 무조건 정치권과 여론에 상관없이 결정하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실제로 그렇게 했다면 어떤 결과를 빚었을까. 론스타에 3000억 원을 배상할 일은 없었겠지만 평생 론스타의 '먹튀'를 무력하게 허용했다는 낙인이 찍혔을 것이다.
이번 사건의 진정한 교훈은 정부의 정책 결정 역시 국제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익을 국내 기업과 차별하지 않고 보호하겠다는 투자자 보호 협정을 각국 정부와 체결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외국 투자를 유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치권과 '먹튀' 여론에 떠밀려 외국 투자자의 거래를 지연시키거나 차질을 빚게 하면 거액의 배상금을 물어줄 수밖에 없다. 그게 이번 론스타 판정에서 확인된 사실이다.
판정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한국 정부가 운이 좋았다는 생각도 든다. 론스타는 당초 외환은행 지분을 하나금융이 아닌 HSBC에 팔려고 했다. 6조원에 판다는 계약도 맺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승인 지연으로 계약은 파기됐다. 차후에 론스타는 4조원에 외환은행 지분을 하나금융에 팔게 됐으니 2조원 이상을 손해 본 꼴이 됐다고 주장했다. 그 손해를 한국 정부가 배상해야 한다고 청구했으나 다행히 ICSID가 이를 기각했다. ICSID 소송의 근거가 된 한국-벨기에·룩셈부르크 투자보장협정 발효일인 2011년 3월 27일 이전의 일이기에 ICSID에 관할권이 없다는 게 기각 사유였다. 자칫 발효일 이후에 매각 지연이 있었다면 1조원 이상을 물어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 대목에서도 우리는 국제법을 지켜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어떤 결정이 잘한 건지 못한 건지 판단의 기준이 '사후 결과'이어서는 안된다. 중요한 결정일수록 불확실성이 높다. 어떤 결과를 빚을지 예측하기가 힘들다.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매각한 결정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론스타 외에는 외환은행을 사겠다는 곳이 없었다. 그보다 앞서 외환은행에 투자를 했던 독일 코메르츠 방크는 큰 손실을 입었다.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팔지 않으면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했다. 나중에 외환은행 주가가 올랐으니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게 옳았다는 주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사후 결과를 알고 이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건 신의 영역이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인간은 미래를 알 수 없고 다만 예측할 뿐이다. 그 예측에 기반해 결정한다. 의사결정 당시의 불확실한 상황을 기준으로 그 결정이 옳은지 판단하고 교훈을 찾는 게 인간이 할 일이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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