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4% 법칙(룰)'을 처음 만들었을 때와 현재는 (파이어족) 상황이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지금의 인플레이션이 장기적인 추세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판단이 설 때까지는, 조심스럽게 지출을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지난 4월 윌리엄 벤젠 월스트리트 인터뷰 中)
노후 자금전략으로 잘 알려져 있는 '4% 법칙'. 이 법칙을 만든 미국의 재무관리사 윌리엄 벤젠의 일성입니다.
파이어족을 꿈꾸는 이들 사이에선 이른바 '4% 법칙'이 상식처럼 여겨져 있습니다. 이 법칙은 연간 생활비의 25배를 모은 후 매년 약 4%를 지출하면 일하지 않고 투자 수익만으로 여생을 여유롭게 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4%가 1년 생활비라고 가정할 때 은퇴 시 10억원이 있다면 원금의 4%인 4000만원 정도를 연간 생활비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매달 333만원 정도 되는 돈입니다.
문제는 인플레이션과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4% 법칙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법칙은 투자를 병행해야 한다는 전제가 뒤따릅니다.
벤젠은 미국 주식과 국채에 절반씩 투자하는 포트폴리오를 기준으로 4% 인출 시 노후자산 생존기간을 따져봤습니다. 그랬더니 최악의 경우가 33년이었고, 이 외 대부분이 50년을 넘겼습니다. 반면 주식에 전혀 투자하지 않은 경우 생존 기간이 30년 이내로 '확' 줄었습니다. 벤젠은 "투자 비중이 높을 때 보다, 지나치게 낮을 때 나쁜 결과가 나왔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안정적인 투자 수익을 기반으로 하는데 최근 자산가격이 급락하고 물가까지 오르면서 더 이상 '4% 법칙'에만 매달릴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불확실성 확대…3040 파이어족 '다시 일터로'
'4% 법칙'은 간단 명료해 은퇴 교과서처럼 여겨져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이상기류가 포착되고 있는데요, 기대수명과 자산가치 하락, 높은 인플레이션 등으로 재수정이 불가피 하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이러한 목소리를 반영이라도 하듯, 자산을 불린 뒤 조기은퇴를 꿈꿨던 3040세대 파이어족이 최근 일터로 돌아오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당초 '4% 법칙'을 기반으로 한 조기은퇴 계획이 어그러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새로 일자리를 찾고 있는 30대 파이어족 A씨는 "자산시장 정체나 인플레이션 등의 다양한 시장 변수들이 파이어족에게 더 민감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면서 "매년 늘어나는 기대수명으로 인해 여생 막바지엔 빈털터리가 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다시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고 심경을 토로 했습니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고있는 시민의 모습.[사진 = 연합뉴스]
2년 전 부동산 투자로 수익을 거둔 뒤 파이어족을 선언한 40대 B씨도 "기대수명이 늘어나고 있는데다 인플레이션에 금리 상승으로 인한 이자부담 등으로 생활비 부담이 커지고 있다"며 "무전장수(無錢長壽) 하지 않으려면 재취업 후 경제적인 여건들을 다시 정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한편 최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OECD 보건통계 2022로 보는 우리나라 보건의료 현황'에 따르면 2020년 우리나라 국민의 기대수명은 83.5년입니다. 우리나라 기대수명은 10년간 오름세를 보이며 2020년 기대수명은 10년 전보다 3.3년 늘었습니다. 이는 OECD 국가 평균(80.5년)보다 3년 긴 편입니다.
우리나라 기대수명은 프랑스(82.3년), 독일(81.1년), 미국(77.0년), 멕시코(75.2년)보다 각각 1.2년, 2.4년, 6.5년, 8,3년 길었습니다. 기대수명이 가장 길게 나타난 일본(84.7년)과는 1.2년의 차이를 보였습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대수명과 인플레이션 영향 등으로 4% 법칙을 좀 더 낮추든지 아니면 주식, ETF 펀드, 채권 등 좀 더 공격적인 투자를 병행해야 한다"면서 "파이어족도 각자 자산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과거처럼 '묻어두는 식의 투자'는 지양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그는 이어 "은퇴 후의 자금관리는 일단 한 계좌로 하되, 소득원은 다양화해 리스크를 줄이고 필수·비필수 생활비를 구분하면서 퇴직·개인연금 일시금 수령은 최대한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다른 관계자는 "재무적인 안정을 원하면서 조기은퇴를 하는 것이 오히려 재무적인 위험을 키울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면서 "파이어를 꿈꾸는 3040세대는 최근 경제 상황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기존 계획을 재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국민 10명중 8명 이상 "정년 연장해야"…3040 가장 많아
국민 83%정도는 현재 만 60세인 정년을 연장해 "더 일하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내놓은 '미래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보건복지 대응' 보고서(연구책임자 신윤정)에 따르면 '정년을 연장해야 한다'는 질문에 응답자의 46.1%가 '다소 동의한다', 37.1%가 '매우 동의한다'고 답해 83.4%가 동의했습니다.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는 대답은 14.8%였고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는 답변은 1.8%에 그쳤습니다.
[사진 이미지 = 연합뉴스]
정년 연장에 동의한다는 답변은 3040세대에서 유독 많았습니다.40대가 86.3%로 가장 높았고, 30대가 84.1%였다. 50대와 60대는 각각 82.4%와 82.8%였고 20대 역시 81.2%로 상대적으로 낮았습니다.
또 여성(85.3%)이 남성(81.6%)보다 높았고 배우자가 있을 때(84.6%), 자녀가 있을 때(84.0%) 더 높았습니다. 월 가구 소득이 500만~700만원으로 높은 수준인 경우(85.0%), 대졸인 경우(84.0%)에도 상대적으로 더 많이 정년 연장을 요구했습니다.
한편 정부는 조만간 정년 연장에 대한 사회적 논의에 착수하는데 정년 연장 혹은 폐지, 정년 이후에도 기업이 고령층을 다시 고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을 논의 테이블에 올려 놓을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류영상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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