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우리나라 소비자물가가 지난해 5월보다 5.4% 올라 거의 14년 만에 5%대를 기록한 가운데, 회사 주변의 음식값 역시 크게 올라 1만이하 점심을 찾아보기 어렵다. 여기에 커피까지 마시면 2만원 가까이 지출된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물가는 올라 직장인의 지갑이 그만큼 얇아진 셈이다. 이 때문에 최근 '런치플레이션(lunchflation)'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런치플레이션은 점심(런치)과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합한 신조어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약해지며 재택근무 대신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접하는 점심 물가가 눈에 띄게 뛴 것을 가리킨다.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CNN방송은 최근 미국 동부 매릴랜드주에 사는 켈리 야우 맥클레이의 말을 인용해 "런치플레이션은 100% 진짜로, 모든 것이 비싸졌다. 이전에는 7~12달러(8800~1만 5000원)로 점심을 해결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15달러(1만 9000원) 이하로는 괜찮은 점심을 절대 먹을 수 없다"고 보도했다.
코로나19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각국의 대규모 재정지출과 기후변화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장기화 여파까지 더해지면서 지구촌에 드리운 인플레이션 먹구름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우크라이나 사태와 반도체 공급난 등으로 자동차 가격이 오르는 '카플레이션', 우유 가격이 인상되면서 우유를 재료로 쓰는 빵과 커피 등 관련 제품 가격도 줄줄이 오르는 '밀크플레이션' 등과 같이 인플레에 제품을 붙인 신조어들이 속속 등장할 만큼 인플레가 '발등의 불'이 됐다.
무엇보다 기상이변으로 세계 곡창지대의 농산물 재배가 차질을 빚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후유증으로 곡물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애그플레이션'이라는 단어가 서민들 사이에서도 익숙한 용어가 됐다. 애그플레이션은 농업(agriculture)과 인플레이션의 합성어로, 곡물 등 농산물 가격 상승으로 일반 물가도 오르는 현상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조사하는 세계식량가격지수(2014~2016년 평균 100 기준)는 5월 157.4포인트로 1년 전보다 22.9% 상승했다.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3월(159.7)보다는 다소 낮아졌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곡물 등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밀가루 등 가공식품 물가는 7.6% 뛰었다. 곡물가 상승은 결국 밥상물가로 이어지고 회사주변의 음식값 상승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 같은 인플레는 경기침체와 맞물려 1970년대 말 오일 쇼크 이후 50여 년 만에 '스태그플레이션'이 다시 소환되고 있다. 세계은행은 지난 7일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 4.1%에서 2.9%로 낮추면서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데이비드 맬패스 세계은행 총재는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의 (코로나19) 봉쇄, 공급망 차질,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이 세계 경제 성장에 타격을 줄 것"이라며 "많은 국가가 경기 침체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은행에 이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예상치를 4.5%에서 3.0%를 하향 조정하고 회원국들의 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4.4%에서 8.8%로 대폭 높였다. 마티아스 코먼 OECD 사무총장은 "전 세계 국가들이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타격을 받고 있다"면서 "이는 인플레 압력을 키우며 실질 소득과 지출을 억제하고 경기 회복을 꺾는다"고 지적했다.
[이병문 의료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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