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전 서울시 중구 서소문 소재 대한항공 사옥 1층 일우 스페이스. 추모 3주기를 맞은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선대 회장의 생전 사진 작품을 한 데 모은 '하늘에서 길을 걷다 하늘, 나의 길 - 故 일우 조양호 회장 추모 사진전'이 이 곳에서 열리고 있다.
'체르마트 가는 길'도 이 곳에 전시돼 있다. 길 뒤로 눈 덮인 알프스 풍경을 담은 이 사진은 이번 전시전의 유일한 흑백 사진 작품으로, 조 회장이 특별히 아껴 직접 액자에 담아 지인에게 선물한 작품이기도 하다.
평소 조 회장은 사진 사랑이 각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바쁜 일정에 '출사'를 떠나진 못하고 업무 출장 길에 주로 카메라를 들어 출장길과 풍경 등을 담았다. '항공샷'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일을 하면서도 한 손에 카메라를 들고 있는 경우가 잦아 '카메라 든 회장님'으로 불리기도 했다.
고 조양호 회장의 사진 작품 `톈산산맥, 키르기즈스탄` [사진 = 한진그룹]
조 회장은 평소 카메라 앵글을 바꾸면 같은 사물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고 믿었다. 그의 경영 철학인 기업이 관점을 바꾸면 혁신이 가능하다는 '앵글경영론'도 여기서 나왔다.신규 시장 개척을 위해 해외를 찾을 때마다 카메라를 찾은 것도 이 때문이다. 조 회장은 해외 취항 예정지를 직접 찾아 여행에 적합한 곳인지, 새로운 노선을 개설할 만한 곳인지를 검토했다. 2002년 대한항공이 지난, 옌타이, 샤먼 등 중국에 공격적인 진출에 나설 때도 조 회장은 양쯔강 인근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중국의 잠재력을 확인했다고 이후 언급하기도 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이날 오후 열린 본행사 인삿말에서 "아버님과 함께 출장길에 나서던 그 때 바쁜 와중에도 카메라를 챙겨 같은 풍경을 각자 다른 앵글로 담아내고, 서로의 사진을 보며 속 깊은 대화를 나눴던 일 하나하나가 기억 속에 선연하다"고 말했을 정도다.
조양호 회장은 한 곳을 여러 번 방문하기 보단 안 가본 곳이나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곳,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를 선호했다. 지금은 유명 해외 여행지가 된 베트남 하롱베이, 터키 이스탄불, 중국 황산 등은 조 회장이 직접 카메라 여행을 통해 시장 잠재력을 확인하고 노선으로 개발해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렇게 출장길에 짝은 사진을 그는 달력으로 만들어 해외기업 경영진이나 주한외교 사절 등 국내외 지인들에게 선물해 왔으며, 2011년 달력엔 "요즘 손자들을 보며 세상 사는 법을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나의 선친이 내 아들과 그랬듯이 나도 손자들과 함께 세상 구경 나설 날이 기다려집니다. 그 때 카메라를 통해 보는 세상이 다양한 의미로 다가온다는 것을 진정 알게 되겠지요"라고 전한 바 있다.
조양호 회장 추모 사진전 전경 [사진 = 한진그룹]
조 회장이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때 부친인 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로부터 카메라를 선물 받으면서부터다. 조중훈 창업주 역시 사진 촬영을 즐겼다. 조 회장은 생전 "부친이 선물한 카메라를 메고 세계를 여행하면서 렌즈 속에 추억을 담았다"고 부친과의 여행을 회상하기도 했다.조 회장의 사진 사랑이 주변에 가벼운 오해를 불러 일으킨 적도 있다. 그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으로 활동하던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국 자리를 놓고 독일 뮌헨, 프랑스 안시와 치열한 3자 경쟁을 벌일 때도 조 회장은 카메라를 어깨에 멘 채 외출을 했고 경쟁국 유치위원들로부터 "한국은 이번 경쟁에 여유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조 회장은 2009년 8월 사진에 뛰어난 재능과 열정을 가진 국내 유망 사진작가들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일우 사진상'을 제정했다. 2010년 4월엔 서울 서소문 사옥 1층에 시민을 위한 문화전시공간인 '일우 스페이스'를 개관해 다양한 사진 및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서울 도심 속 문화 공간으로 만들었다. 일우(一宇)는 조 회장의 호(號)이다.
조양호 회장 추모 사진전 전경 [사진 = 한진그룹]
이번 사진전 역시 일우스페이스에서 열렸다. 1관에서는 조 회장이 항공기에서 촬영한 하늘 모습과 대지 풍경을, 2관에서는 풍경 사진 15점과 달력 10점 및 고인이 평소 아꼈던 사진집, 카메라, 가방 등의 유류품을 돌아볼 수 있다.이날 오후 열린 본 행사에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 조현민 (주)한진 사장 등 유가족을 비롯해 한진그룹 전현직 임원, 외부 인사 등 약 200명이 참석했다. 조 회장 추모사업 일환으로 사진전 개최에 맞춰 흉상 제작도 마쳤다.
이번 사진전은 오는 27일까지 약 3주 동안 이어진다. 총 40점의 조 회장 유작과 유류품을 확인할 수 있다.
[배윤경 매경닷컴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