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빌리티', '스틸리온', '지오센트릭'.
최근 우리나라 대기업 사명(社名)에 등장한 단어들이다. 그동안 한글 대신 영어를 회사 이름에 붙이는 게 트렌드였다면, 최근에는 영문 조합어를 쓰는 기업이 늘고 있다. 또 과거에는 사업의 변화·확대가 사명 변경의 계기였다면, 요새는 철학이나 이미지를 담는 게 유행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두산중공업은 주주총회에서 '두산에너빌리티'로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 에너빌리티(Enerbility)는 에너지(Energy)와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결합한 단어다. 회사는 "결합을 가능케 한다는 'Enable' 의미도 포함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두산그룹 주력 계열사인 두산중공업(옛 한국중공업)마저 21년 만에 간판을 바꾸면서, 자회사 가운데 한글 이름을 쓰는 회사는 사실상 사라졌다. 상장사(퓨얼셀·밥캣·오리콤)는 모두 영어 이름이고, 밥캣 자회사인 산업차량만 유일하게 한글을 쓴다.
포스코강판은 포스코스틸리온이 됐다. 스틸리온(Steeleon)은 'STEEL is essence ON everywhere(철은 어디에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포스코홀딩스 그룹사 상장사 중 한글·한자어를 쓰는 곳은 사라졌다. 비상장 자회사 가운데 건설 정도만 한글 사명을 쓴다.
작년 8월 새로 탄생한 SK지오센트릭(옛 SK종합화학)도 영문 조합어다. 지구·토양을 뜻하는 '지오(Geo)'와 중심을 의미하는 '센트릭(Centric)'을 합쳤다. 비슷한 시기 한화종합화학도 '한화임팩트(Impact)'가 됐다. 그러면서 사명에 '종합화학'을 쓰는 대기업을 찾을 수 없게 됐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또 다른 단어는 '상사(商社)'다. 작년 3월 현대종합상사가 창립 45년 만에 사명을 현대코퍼레이션으로 바꿨다. 몇 달 뒤 LX홀딩스 자회사로 편입된 LG상사가 26년 만에 회사 이름을 LX인터내셔널로 바꾸면서 상사라는 업종 표시어를 쓰는 대기업이 전무해졌다.
현대중공업지주는 HD현대가 됐다. HD는 '인간의 역동적 에너지(Human Dynamics)'와 '인류의 꿈(Human Dreams)'이란 뜻이라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주력 계열사면서 조선사인 현대중공업과 구분 짓는 효과도 있다. HD현대 계열사명에는 조선해양·건설기계 등 한글이 일부 포함돼있다.
그밖에 주방·생활가전 제품 제조사인 위니아딤채는 김치의 옛말인 '딤채'를 회사 이름에서 제외했다. 사업 영역이 확대되면서 김치냉장고에 한정된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철강사인 KG동부제철은 KG스틸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스틸은 철강업계에서 비교적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사명으로, 다른 사례로 세아베스틸·아주스틸 등이 있다.
김정현 인하대 경영학과 교수는 "합성어를 사용함으로써 회사가 트렌디해 보이는 이미지를 가져올 수 있지만, 변경 의미를 한 번에 알아챌 수 없다면 퇴색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브랜드 의미를 얼마나 고객이 이해하느냐가 기업 성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가 많다"며 "고객 대상으로 변경된 사명의 의미를 전달해야 하는 비용적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유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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