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경은 눈 뒤편의 작은 통로를 통해 뇌에 시각 정보를 전달한다. 살다 보면 이 작은 통로에 압력이 누적되고 안구 움직임으로 인한 구조의 변화가 생긴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효과적으로 시신경을 보호하지 못하게 되고 시신경은 천천히 손상된다.
이처럼 녹내장은 시신경이 눌리거나 혈액공급 장애가 생겨 시신경 기능에 이상이 생기는 병이다. 당뇨병성망막증, 황반변성과 함께 대표적인 3대 실명 질환으로 꼽힌다. 초기에는 뚜렷한 증상이 없어 알아차리기 어렵고 병증이 꽤 심해져 실명에 이를 무렵에서야 시야가 흐릿해지는 증상이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녹내장을 '소리 없는 시력 도둑'으로 부르는 이유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국내 녹내장 환자는 2020년 96만 4812명으로 2016년 80만 8012명보다 19.4% 증가했다. 김용찬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안과 교수는 "녹내장이 발병하면 무조건 실명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조기에 발견해 적절히 치료하면 실명하지 않는다. 일단 녹내장이 진행되면 치료를 받더라도 시야와 시력을 되돌릴 수 없는 만큼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녹내장의 원인은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안압 상승과 노화가 주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진다. 실제 높은 안압은 장기적으로 녹내장이 발생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안압이 상승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특히 극심한 통증을 동반하고 중년 여성에서 많이 발생하는 급성폐쇄각녹내장은 흔히 두통과 구역감을 동반하기 때문에 뇌질환과 착각하기 쉽고, 처치가 지연될 경우 단기간에 실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급성폐쇄각녹내장은 나이가 들어 점점 두꺼워진 수정체에 비해 눈의 용적이 작아 눈의 하수구(섬유주)를 막으면서 나타난다. 이밖에도 당뇨가 오랜 기간 조절되지 않을 경우 당뇨합병증으로 인한 섬유혈관 조직이 섬유주를 덮게 되면 안압이 크게 높아진다. 마찬가지로 포도막염이라는 눈의 만성적 염증이 생겨도 섬유주가 망가져 안압이 올라간다. 원래부터 안압이 높게 형성된 눈도 있다.
그러나 안압이 낮다고 녹내장이 안 걸리는 것은 아니다. 정상 안압은 일반적으로 10~21mmHg이지만 사람에 따라 안압이 정상 범위에 있어도 시신경 손상을 받는 경우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를 포함해 중국, 일본 등 동북아시아는 안압이 높지 않아도 녹내장이 발생하는 환자, 즉 '정상안압녹내장' 환자의 비중이 서양보다 월등히 높다. 전체의 80% 이상이다. 정상안압녹내장은 안압 외에도 고혈압, 당뇨 등과 같은 성인병이 위험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또 고도근시의 원인 중 하나인 '축성근시'로 안구 앞뒤가 길어지면 시신경이 당겨지면서 상대적으로 시신경이 더 얇아지고 구조적인 이상 발생률이 높아지며 녹내장 위험을 높인다. 아울러 축성근시로 인해 시신경을 보호하는 공막(흰자위)이 바람 넣은 풍선처럼 얇아지게 되고, 안구가 커진 만큼 혈관이 증가하지 못해 나타나는 혈류 저하도 시신경 건강에 간접적이지만 악영향을 끼친다. 도수가 높은 안경을 착용할 경우에도 녹내장 검사가 필요하다.
김용찬 교수는 "안압은 녹내장이 발생하는 주요 원인이지만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라며 "안압이 평균에 비해 높은 편이라도 시신경을 잘 보호할 수 있는 눈은 녹내장이 발생하지 않지만, 안압이 평균 이하라도 시신경을 잘 보호할 수 없는 구조를 가진 눈은 녹내장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녹내장이 발생하면 시야의 주변부부터 잘 보이지 않게 된다. 이런 증상은 점점 시야의 중심부로 확대된다. 그러나 증상이 아주 천천히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기 때문에 자각하기 어렵고 병이 어느 정도 진행된 후에야 자각증상을 호소한다. 특히 글씨를 읽는 등의 시력은 대부분 보존되기 때문에 쉽게 알기 어렵다. 따라서 눈에 통증이 있거나 침침하고 초점을 맞추기 어렵다면 바로 전문의를 찾아 진단을 받는 것이 좋다.
녹내장 치료는 안압을 떨어뜨려 시신경을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 급성은 안압을 내리는 안약을 점안하고 안압강하제를 복용하는 등 신속한 처치가 필요하다. 만성은 안압강하제 등의 약물치료를 시행한다. 안압이 내려간 후에는 레이저 치료를 통해 눈 속 '방수(房水)'의 순환을 돕고, 안압이 정상화된 후에는 시야 검사를 통해 시력손상 여부를 확인한다. 특히 녹내장은 양쪽 눈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지만 시신경 손상 정도에 차이가 많아 상대적으로 건강한 눈에 의해 손상이 심한 눈의 증상을 느끼지 못할 때도 많다. 만약 약물이나 레이저 치료로도 안압이 충분히 내려가지 않는다면 녹내장 수술을 진행한다. 김용찬 교수는 "녹내장은 치료를 하더라도 이미 손상된 시신경 기능을 돌이킬 수 없고 손상의 진행을 늦추는 정도의 치료만 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어떤 질환보다 조기발견과 조기 치료가 매우 중요한 질환"이라며 "노안이 시작되는 40대 이상이거나 고혈압 혹은 당뇨 등 심혈관계 질환이 있는 경우, 근시가 심한 고도근시나 초고도근시인 경우, 가족력이 있는 경우라면 6개월에서 1년에 한 번 정기적으로 안과에 내원해 녹내장 정밀검사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병문 의료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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