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2년 연속 물가상승률이 0%에 그쳤다. 통계청이 31일 내놓은 물가 동향에 따르면 올해 소비자 물가지수 상승률은 0.5%다. 지난해 0.4%에 이어 2년 연속 0%대를 기록한 것은 1965년 통계 작성이후 최초다.
통계 수치로는 '저물가'라고 하지만 가까운 마트에만 가봐도 이를 실감키는 어렵다. 돈 만원을 쥐고 가도 살 수 있는 게 많지 않아서다.
특히 과일이나 채소, 생선류는 저물가 시대라는 게 야속할 정도로 비싸다.
장바구니 물가는 과연 과거와 비교해 얼마나 올랐기에 이렇게 체감되는 것일까. 하나은행 하나금융연구소가 1980년부터 2020년까지 우리나라 가계가 소비하는 주요 품목의 소비자가격 변화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40년간 서울 지하철 기본요금은 16배(80원→1250원), 택시 기본요금은 10배(400원→3800원)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중 자장면 값은 14배(350원→5000원), 소고기 값은 17배(한우등심 100g 533원→8957원) 뛰었다. 또, 지난 40년간 쌀 값은 3배(4kg 3000원→9500원) 오른데 그친 반면, 배추 값은 13배(10kg 750원→9358원), 국립대 등록금은 19배(인문계열 13만원→244만원) 각각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결과에 비춰 볼 때 가계가 체감하는 물가는 가계별로 소비하는 재화와 서비스의 구성에따라 다를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체감할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를 중심으로 물가의 변동을 체감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주부는 채소나 과일을 사는 시장바구니에서, 직장인은 점심 값과 교통비에서, 학생은 책이나 학용품 값 등에서 주로 물가의 움직임을 느낀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체감하는 물가상승률이 물자지수 작성기관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물가상승률보다 높다는 느낌을 자주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공통적 현상이다.
체감물가와 지수물가가 서로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를 더 살펴보면, 집집마다 소비하는 물품들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시점에서 대학 등록금이 많이 올랐으나 기술의 발전으로 텔레비전등 가전제품 가격은 하락해 소비자물가지수는 변동하지 않았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대학생 자녀를 둔 부모는 교육비 부담 증가로 물가가 올랐다고 느끼는 반면, 전자제품을 구입하는 가계는 물가가 내렸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
이같이 지수물가는 여러 가지 상품을 일정한 기준에 따라 종합한 평균적인 물가수준을 나타낸 반면 체감물가는 소비자가 구입했던 상품의 가격을 중심으로 한 주관적 느낌을 반영한 것이어서 차이가 날 수 있다.
이 외에도 생활수준의 향상이나 자녀의 성장 등에 따라 소비지출이 늘어난 것을 물가가 오른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여기에 사람들이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심리적 요인도 작용할 수 있다. 사람들이 적게 오르거나 하락한 품목보다 많이 오른 품목을 중심으로 물가변동을 판단하는 경향도 한 몫 한다.
한편, 소비자물가지수는 480여개 항목으로 이뤄져 있으며 소비생활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각각 가중치를 둔다. 예컨대 쌀 등 곡물의 가중치는 6.7이며, 배추 등 채소는 15.8, 사과 등 과실은 15.6으로 총 소비자물가지수 가중치(1000) 중 농축수산물의 가중치는 77.1이다. 체감하는 농축수산물 가격이 많이 뛰었지만 총 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전월세 등 집세 가중치(93.7)보다도 낮다. 이같이 소비자물가지수를 구성하는 항목에 대한 비중이 달라 실제 물가와 괴리감이 생긴다.
[전종헌 매경닷컴 기자 cap@mkinternet.com]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