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이 넘는 역사 속 LG는 다른 재벌기업들과 달리 경영권 분쟁이 없었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룹 전통인 '장자승계' '형제독립' 원칙 때문이라 재계는 입을 모은다.
가족 간 경영권 다툼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승계 대상을 '장자'로 기정하고 계열분리를 통한 투명한 지배구조를 확립했다. 이 강력한 원칙은 LG의 순조로운 경영권 승계를 이끌어 온 원동력으로 평가받는다.
고(故) 구본무 회장 동생인 구본준 LG 고문이 LG상사와 LG하우시스, 판토스 등을 거느리고 LG그룹에서 계열 분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16일 재계에 따르면 LG그룹은 이르면 오는 26일 이사회를 열고 구 LG 고문의 계열 분리안과 사장단을 비롯한 임원 인사를 단행한다. 구 고문은 고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셋째 아들, 구본무 LG 회장의 동생이며, 구광모 LG 회장의 작은 아버지다.
2018년 5월 구본무 회장이 별세하고 구광모 회장이 LG 대표이사에 선임되자 구 고문은 경영일선에서 즉각 물러나 연말인사에서 퇴임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룹을 떠나면서 구 고문은 조만간 비주력 계열사 1~2곳을 떼어내 계열분리를 추진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2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우선 구 고문은 올해 LG상사와 LG하우시스, 판토스 등을 거느리고 LG그룹에서 계열 분리하는 방안이 이사회 결의를 거칠 것으로 보인다.
구 고문은 LG 지주사인 ㈜LG 지분 7.72%를 보유하고 있다. 이 지분의 가치는 약 1조원 정도다. 구 고문은 이 지분을 활용해 LG상사와 LG하우시스 등의 지분을 인수하는 형태로 독립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LG상사는 지난해 LG그룹 본사 건물인 여의도 LG트윈타워 지분을 ㈜LG에 팔고 LG광화문 빌딩으로 이전했다.
또 구광모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는 LG상사의 물류 자회사인 판토스 지분 19.9%도 매각하는 등 계열 분리 사전작업을 해왔다.
구 고문이 상사를 중심으로 한 계열분리에 나서는 것은 현재 LG그룹의 주력사업인 전자와 화학을 온전히 보존하면서 지배 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당초 2018년 구광모 회장 취임 직후에는 LG이노텍, LG디스플레이 LG유플러스 등 전자 계열의 분리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이들 회사는 LG전자의 미래 먹거리와 직결된 회사인데다 기업 규모도 커 당시에도 계열 분리가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현재 지주회사인 ㈜LG는 LG상사 지분 25%, LG하우시스 지분 34%를 쥔 최대 주주이며 LG상사는 그룹의 해외 물류를 맡는 판토스 지분 51%를 보유하고 있다. 구 고문은 2007년부터 3년간 대표이사를 지낸 바 있다.
이번에 계열에서 분리할 LG상사의 시가총액은 7151억원, LG하우시스는 5856억원으로 규모가 크지 않아 구 고문의 현재 지분 가치로 충분히 충당이 가능한 수준이라는 게 재계의 평가다. 현재 구 고문이 보유한 ㈜LG 지분을 ㈜LG가 보유하고 있는 LG상사·LG하우시스 지분과 교환하는 스와프 방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계열분리 회사의 규모가 작다는 점에서 LG 안팎에서는 반도체 설계 회사인 실리콘웍스와 화학 소재 제조사 LG MMA의 추가 분리 전망도 나온다.
이 같은 계열분리는 LG의 전통을 비춰봤을 때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LG는 장자에게 경영권을 승계하면 다른 형제들은 각자 독립해 별도의 영역을 개척해왔다.
구인회 LG 창업주 동생 구철회 명예회장 자손들이 1999년 LG화재를 만들어 그룹에서 독립시킨 뒤 LIG그룹을 만든 것이 좋은 예다.
2대 구자경 회장 동생 구자학 회장이 LG유통(현 GS리테일)의 FS사업부를 분리해 아워홈으로 독립했으며, LG그룹의 전선·금속 부문과 에너지·유통·건설 부문을 분리해 LS그룹과 GS그룹을 탄생시킨 것도 마찬가지다.
한편 이와 관련해 LG그룹 관계자는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다각적인 방안을 검토 중이나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승한 기자 winone@mkinter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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