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다시 구속 위기에 처했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1년간 수감생활하고 풀려난 지 2년 4개월 만이다.
8일 업계 및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원정숙 영장전담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10시 30분 이 부회장을 비롯해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 실장(부회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사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다.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 등으로 2017년 2월 구속돼 이듬해 2월 석방된 후 또 다시 재구속 기로에 놓였다. 이 부회장의 구속 여부는 이날 밤 혹은 다음날인 9일 새벽에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구속심사에는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 이복현 부장검사와 최재훈 부부장 검사, 의정부지검 김영철 부장검사 등 검찰 수사팀이 투입된다. 이 부회장 측은 특수통 검사 출신과 판사 출신 변호사 10여명이 참여한다.
지난 4일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는 이들 세 사람에 대해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시세조종 행위, 주식회사 외부감사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전 사장에게는 위증 혐의를 추가했다.
이날 구속심사는 삼성과 검찰 양측에게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인 만큼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검찰은 20만쪽에 달하는 수사기록을 내세우며 충분한 증거를 확보했다고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검찰은 오랫동안 진행된 수사로 확보한 객관적인 물증과 관련자 진술을 근거로 혐의를 입증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최 전 실장 등이 경영권 승계 문제를 이 부회장에게 보고한 것으로 보이는 미전실 내부 문건 등이 스모킹건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
반면 이 부회장 측은 검찰이 1년7개월 동안 수사로 이미 수집할 수 있는 증거는 모두 수집했고, 글로벌 기업 총수인 이 부회장이 도주할 우려가 없다는 점을 들며 구속 사유의 부당함을 알릴 것으로 보인다.
또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은 금융당국과 법원에서도 판단이 엇갈린 만큼 범죄 혐의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반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세조종 혐의도 절차상 위법은 없었다는 입장을 항변할 가능성이 크다.
더불어 검찰 외부 전문가들로부터 기소 여부가 타당한지 객관적 판단을 받기 위해 지난 2일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신청하자,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검찰은 1년 7개월을 이어온 수사가 막판에 흔들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사 신뢰성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지난해 검찰은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를 받는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에게 구속영장을 두 차례 신청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여기에 이 부회장 구속영장까지 기각되면 검찰의 입지와 수사 신뢰성에 흠집이 생길 수밖에 없다.
반대로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삼성은 최악의 경영 공백 사태를 맞게 된다. 최근 삼성 안팎에선 미·중 무역분쟁과 일본 반도체 수출규제, 코로나19 확산 등 대내외 악재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총수 부재 리스크가 겹치면 삼성에겐 심각한 타격이 될 수 있다.
총수 공백이 장기화되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쳐지는 것은 물론, 최종 의사결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인수합병(M&A) 투자와 신사업 진출 등이 당분간 전면 중단될 가능성도 높다. 2016년 국정농단 사태에 이 부회장이 연루되고 2018년 2월까지 구속되면서 삼성의 경영시계는 사실상 2년 동안 멈췄다. 실제 삼성전자는 2016년 11월 하만 인수 결정 후 지금까지 대형 M&A가 전무한 상태다.
이 부회장이 풀려난 후 지난해 삼성은 133조원 투자로 시스템반도체 1위 달성이라는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하며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지만 이 부회장이 구속되면 이 같은 행보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대규모 투자나 인수합병 등에서는 총수 결단이 중요하며, 총수 부재 상황이 장기화되면 결국 신산업 투자가 어려워지고 기업의 중장기적 미래를 봤을 때 결코 긍정적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은 검찰이 지난 4일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한 이후 최근 사흘 연속 입장문을 내며 경영권 승계가 불법이라는 의혹을 적극 방어하는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전날에는 의혹 해명과 함께 "삼성이 위기다. 경영이 정상화돼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매진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달라"며 호소하기도 했다.
[김승한 기자 winone@mkinter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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