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 폐렴'은 전파력이 강한 데다 무증상 감염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제 2차, 3차 감염 등은 의미가 없다. 전면전이 필요하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처방안 긴급 토론회'에서 보건당국이 서너 수를 내다보고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날 토론회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와 한국과학기술한림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민생활과학자문단이 공동 주최했다.
이 교수는 "현장에서 감염병 위기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건의해도 정부가 받아들이는 시점이 되면 그때는 이미 늦어버리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며 "현재는 유입 환자를 차단하고 지역사회 내 전파를 막는 게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은 엄격한 관리와 대응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기"라며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전반적인 방역 체계를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우한 폐렴의 전파력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달 24일 우한 폐렴의 예상 전염병 재생산 지수(R0·감염자 1명이 직접 감염시키는 평균 인원 수)를 1.4~2.5로 추정했지만, 점차 올라가 현재는 2.5~3.3 수준으로 분석되고 있다. 메르스의 경우 R0가 0.4~0.9에 불과했다.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R0는 4 정도다.
증상이 아예 나타나지 않는 잠복기나 증상이 약한 초기의 전파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교수는 "국내 3번 환자가 6번 환자에게 전파한 양상을 보면 증상 초기에도 감염이 쉽게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며 "통상 감염병은 증상이 심각해졌을 때 전파가 수월해지는데 그 양상과 다른 패턴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보건당국은 신고된 우한 폐렴 의심환자 중 중국에 다녀온 사람에 한해서만 진단을 실시하는 등 미온적 대응에 그치고 있다. 태국에서 들어온 16번 환자(42·여)의 경우 확진에 앞서 수차례 보건소 측에 검사를 요청했지만 담당자는 중국에 다녀온 환자가 아니면 검사를 하지 않는다는 게 보건당국 지침이라며 거부했다. 발한 등 우한 폐렴 의심 증상으로 지난 1일 질병관리본부 신고 후 선별 진료소를 찾은 50대 여성 A씨 역시 같은 이유로 검사를 받지 못한 채 불안감을 안고 귀가해야 했다. 당시 의료진은 "격리를 원할 경우 병원에 남으라"는 말만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혁민 연세대 의대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도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2019-nCov)는 앞서 발생한 사스나 메르스에 비해 적절한 검사법을 개발하고 평가할 시간적 여유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측면에서 매우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그는 "2015년 국내에서 문제가 됐던 메르스의 경우 2012년에 이미 보고가 됐었고 2014년에 이미 진단법을 개발해둔 상태였기 때문에 비교적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며 "반면 2019-nCov는 전 세계적으로 한 번도 보고된 적 없던 병원체인 데다 전파력이 강해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국제적으로 2019-nCov의 분석 데이터가 신속하게 공유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한 폐렴의 백신과 치료제 개발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부하령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감염병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2019-nCov의 염기서열 분석을 보면 박쥐에서 분리한 코로나바이러스와는 96%, 사스바이러스와는 79.5% 유사성을 보이고 있고 세포 감염을 매개하는 단백질들이 사스와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사스나 메르스의 플랫폼을 활용해 백신과 치료제 개발이 좀 더 빨리 이뤄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부 연구원은 "중국 보건당국에 따르면 초기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망자 대부분이 60세 이상이거나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이고 이는 사스 때와 다르지 않다"며 "같은 바이러스라고 하더라도 숙주에 따라 감염 후 무증상에서 사망까지 다른 결과가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주실 범부처 방역연계 감염병연구개발사업단장은 신종 감염병 대응을 위해서는 "질병관리본부를 중심으로 다양한 시나리오에 의한 범부처의 정기적인 상황 연습이 필요하다"며 "신종 감염병으로 인한 모든 예기치 못한 상황을 분석하고 방향을 재설정하고 국민과 관련자를 이해시킬 수 있는 각 분야 전문가를 참여시키고 육성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명자 과총 회장은 이날 개회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응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실체를 모른다는 사실"이라며 "불확실한 상황에서 사회적 동요가 커지고 있는 만큼 과학기술계에서도 이 사태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가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고 이번 토론회 개최 배경을 밝혔다.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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