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1㎕(마이크로리터·1㎕는 100만분의 1ℓ) 수준의 극미량 혈액만으로도 간단하게 암을 진단할 수 있는 진단 키트 기술을 개발했다. 많은 양의 피를 뽑을 필요가 없고 복잡한 처리 과정이 없어 다양한 암 진단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여 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조윤경 기초과학연구원(IBS) 첨단연성물질연구단 그룹리더(울산과학기술원(UNIST) 생명과학부 교수) 연구진은 혈장(혈액에서 혈구를 뺀 나머지)에서 세포 정보가 담긴 나노소포체를 포획해 암을 진단하는 혈소판 칩을 개발했다고 20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펑셔널 머티리얼즈' 5월 27일자에 표지논문으로 게재됐다.
우리 몸속 수많은 세포들은 나노소포체를 주고받으며 서로 정보를 주고 받는다. 때문에 암세포가 배출한 나노소포체를 분석하면 암의 발생과 전이를 진단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채취한 시료에서 암세포에서 유래한 나노소포체만을 선택적으로 분리하기가 매우 어려웠고 민감도가 낮아 많은 양을 농축해야 했다.
연구진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암세포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혈소판의 막을 이용해 암세포 유래 나노소포체를 쉽게 포획할 수 있는 진단 시스템을 개발했다. 암세포는 정체를 숨기기 위해 혈소판에 둘러싸인 형태로 혈액을 통해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또 전이될 곳에 달라붙는 과정에도 혈소판이 도움을 준다. 이처럼 나노소포체와 암세포 간의 상호작용 특성에 착안한 것이다.
연구진이 개발한 혈소판 칩은 미세유체칩 안에 혈소판 세포막을 바닥에 고정한 형태다. 암세포는 혈소판 칩을 일반적인 혈소판으로 인식해 칩 표면에 결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원리로 암세포에서 유래한 나노소포체만을 선택적으로 검출해낼 수 있는 게 연구진 설명이다.
연구진이 혈소판 칩에 암환자와 건강한 사람의 혈장 1㎕를 혈소판 칩에 주입한 결과, 정상인에 비해 암환자의 혈장에서 다량의 나노소포체가 검출됨을 확인했다. 전이암세포 실험에서는 비전이암세포 실험보다 더 많은 나노소포체가 검출됐다. 이는 혈소판 칩에 검출된 나노소포체의 양을 토대로 암 발생과 전이 여부를 진단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논문의 제1저자인 수밋 쿠마르 IBS 연구위원은 "지금까지 개발된 대부분의 나노소포체 기반 암 진단 기술은 해당 암에 특이적인 항체를 반응시켜 나노소포체를 검출하는 방식이었다"며 "하나의 질병에 하나씩 대응하는 항체 기반 진단 기술과 달리 혈소판 칩은 여러 종류의 암을 진단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조 리더는 "체내의 혈소판-암세포 친화력을 모방해 극미량의 혈장에서 암세포에서 나온 나노소포체를 특이적으로 검출했다는 점에서 실용화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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