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KAIST 경영대 기숙사가 정전된 사건이 있었다. 한 학생이 방에서 맥주를 빚던 중에 차단기가 내려간 것이다. 그 일로 기숙사에서 쫓겨날 뻔했던 학생은 국내·외 손꼽히는 양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맥주회사 공동 창업자를 거쳐 지난해 12월 KAIST MBA 출신 동문들과 의기투합해 2017년 12월 유기농 발효음료 스타트업인'부루구루'를 창업했다.
KAIST 테크노 MBA 졸업생 박상재 씨(만30세)의 이야기다. 박 씨가 창업한 스타트업'부루구루'에는 현재 총 4명의 KAIST 석·박사들이 실무진으로 참여 중이다. 박훈(만29세·테크노 MBA 재학 중), 추현진(만40세·테크노 MBA 2015년 졸업), 김형진(만31세·경영공학부 박사 2018년 졸업) 씨 등 이다.
이들이 주목한 아이템은 '콤부차(Kombucha)'다. 녹차나 홍차를 우린 물에 여러 미생물로 구성된 공생체를 넣어 발효한 음료다. 고대 중국 만주일대에서 유래한 음료로 현대그룹 창업주인 故 정주영 회장, 로널드 레이건 前 미국 대통령이 즐겨 마셨으며 최근에는 미란다 커, 레이디 가가, 아만다 사이프리드 등 할리우드 스타들의 기호식품으로 유명세를 탔다.
지난해 전 세계 콤부차 시장은 1조 3000억 원 규모로 전년 대비 37.4% 성장했다. 건강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당류나 탄산음료가 주도하던 시장이 건강 음료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코카콜라, 펩시코(PepsiCo), 닥터페퍼 스내플 그룹 등 세계적인 음료업체들도 콤부차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2015년부터 투자와 기업 인수에 나서고 있다. 부루구루는 음료 시장의 변화와 잠재력을 발견한 국내 엑셀러레이터 퓨처플레이와 미국 실리콘밸리 기반의 스파크랩벤처스로부터 총 7억 원의 초기 투자를 받았다. 콤부차는 맥주와 공정 방식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양조 전문가인 박상재 대표가 전반적인 경영과 함께 제품 개발에 주력한다. 수제 맥주를 개발할 때처럼 설비 하나하나를 직접 제작해 창업 6개월 만에 종균 배양 용기에 관련한 특허 출원을 완료했다.
공동 창업자인 박훈 CTO가 생산과 일반 경영 관리를 담당하고 아모레퍼시픽 미래성장팀에서 사내·외 스타트업을 기획하고 운영해온 경력의 소유자인 추현진 이사가 전략파트를 담당한다. 올해 초 경영공학부 박사과정을 졸업하고 합류한 김형진 이사는 고객관리를 맡고 있다. 총 12명의 직원 중 절반 이상이 양조와 R&D가 가능한 인력이다.
지속적인 연구개발의 결과로 부루구루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종균을 자체 배양하는 기술 및 유통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제품의 변질을 막고 대중이 선호하는 맛과 향을 극대화하는 발효 컨트롤 기술을 확보했다. 또한, 맥주나 샴페인을 생산할 때 사용하는 기술도 도입하는 등 새로운 형태의 콤부차를 독자적으로 개발해냈다. 국내 콤부차 시장은 제품에 대한 낮은 인지도와 수입 제품의 고가 전략 탓에 소비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간혹 소규모 개인 생산자의 제품이 판매된 적 있지만 안정된 시장을 형성하지 못한 상태다.
균일화된 품질 관리와 대량 생산·유통 시스템을 자체적으로 완성한 부루구루는 국내 콤부차 시장을 선도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우리 국민 열 명 중 한명이 콤부차를 경험하게 되는 시점까지는 시장이 계속 성장할 것이라는 게 이들의 전망이다. 미국·중국에도 진출해 5년 내 글로벌 시장에서 주요 기업으로 자리매김한다는 장기적인 비전도 세웠다.
'건강한 음료로 건강한 사람과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 이바지 하겠다'는 것이 창업에 뛰어든 KAIST 동문들의 포부다. 수익 창출에서 그치는 창업이 아닌,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KAIST가 추구하는 기업가 정신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또한, 박상재 대표는 지난 5월 모교에 총 1억 원의 창업 장학금을 기탁했다. 창업을 꿈꾸는 후배들이 경제적 부담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하려는 것이다.
부루구루는 기업의 모토로 형제애(brotherhood)를 강조한다. 훗날, 사업이 일정 궤도에 올랐을 때 단편적인 성공을 맛보고 각자의 길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성공을 거듭하며 그 이후의 단계까지 함께하는 의미다.
파이낸셜 타임스가 발표한 2018년 세계 경영대학들의 창업 랭킹에서 국내 대학들은 50위권 안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미국이 21개 학교, 영국이 10개 학교의 이름을 올리며 50위권 차트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아시아권에서는 중국과 인도를 합쳐 총 5개 학교가 진입했다. 박상재 대표는"외국에서는 경영학 석사(MBA) 출신의 20%~30%가 창업을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MBA 출신의 창업가를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며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원인을 분석했다. 이어 박 대표는"자신의 꿈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창업자가 많아질 때 우리 사회도 지속적인 발전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며 "부루구루의 성공을 통해 국내 MBA 창업의 좋은 선례를 남기고 싶다."고 밝혔다.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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