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성인의 뇌에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새로운 뇌 세포가 만들어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불과 한달전 미국 연구진이 "13살 이후에는 뇌에서 새로운 세포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라는 주장을 뒤엎는 내용이다.
미국 컬럼비아대 연구진은 14~79세 28명의 기증받은 시신을 이용해 뇌 해마를 관찰한 결과 성인의 뇌에도 마치 어린아이 처럼 수천개의 새로운 신경세포(뉴런)가 만들어지는 것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셀 스템 셀' 5일자(현지시간)에 게재됐다.
지난달 7일 학술지 '네이처'에는 뇌과학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연구성과가 게재됐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샌프란시스코캠퍼스(UCSF) 연구진이 기증받은 37구의 시신을 분석한 결과 13살 이후의 해마에서는 새로운 신경세포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한 것이다. 연구결과는 학계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지난 20년 동안 동물을 비롯해 인간의 뇌에서는 모두 새로운 뉴런이 만들어진다는 통설을 뒤집는 결과였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새로운 뉴런은 태아와 갓난아기에게서 다량 발견됐지만 이후 급격히 줄어드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18살 이상의 뇌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네이처는 논평을 통해 "새로운 신경세포 생성이 아동기에 끝난다는 이번 연구결과는 논쟁을 촉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성인이 되어도 만들어지는 신경세포를 이용해 알츠하이머나 우울증과 같은 뇌 질환을 치료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에 이번 논문이 갖고 있는 파장은 컸다. 사실이라면 그동안 과학자들이 시도한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어서다. 하지만 UCSF의 연구가 갖고 있는 한계점을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기증받은 시신은 살아생전 뇌전증을 앓고 있었던 환자였던 만큼 사망 직전 극도의 스트레스나 우울증 등이 영향을 줬을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임혜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신경과학연구단 선임연구원은 "살아있는 사람의 뇌를 직접 들여다보는 것이 불가능한 만큼 성인 뇌세포를 관찰하려는 연구는 그동안 많은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컬럼비아대 연구진은 UCSF가 발표한 논문의 한계를 보완했다. 이들은 14~79세 28명의 시신을 분석했는데, 이들은 모두 건강하게 살다가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이었다. 연구진은 "실험 대상자들은 새로운 뇌세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우울증을 앓지도 않았으며 항우울제 복용도 없었다"며 "사망 직후 생성된 뉴런과 전체 해마의 혈관 상태 등을 관찰한 첫 번째 연구 성과"라고 평가했다. 연구진은 성인의 뇌에서도 새로운 신경세포가 다량으로 만들어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연구를 이끈 마우라 볼드리니 컬럼비아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신경세포를 만드는 '신경계 전구세포'와 수천개의 미성숙한 뉴런이 나이가 많은 성인의 뇌에서도 발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령일수록 뇌에서는 적은 수의 혈관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신경계 전구세포의 수 역시 젊은 사람과 비교하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드리니 교수는 "나이가 들수록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마도 이처럼 새롭게 만들어지는 신경줄기세포의 수가 줄어들기 때문으로 추측된다"고 덧붙였다. 최영식 한국뇌연구원 뇌질환연구부장은 "이번 논문에 따르면 적은 수이지만 고령의 나이에서도 뇌에서 충분히 많은 신경세포가 생성되는 것으로 보인다"며 "학습기억과 관련되는 해마의 새로운 신경세포 생성은 나이에 따라 감소하는데 이것 역시 기존 가설과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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