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구두 공장이 한국에 있다. 청각장애인 직원과 시각장애인 대표가 만들어내는 수제화 구두 공장이 바로 그곳이다. 이 곳이 다시 햇빛을 보게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밑창이 떨어질 때까지 신었다던 구두 '아지오'를 만든 회사 '구두 만든 풍경'이 폐업한 지 4년 만에 새 출발을 알린 것.
새로운 공장 개업식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만난 유석영 아지오 대표(58)는 "아지오는 나의 한(恨)이자 우리의 꿈"이라며 새 출발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아지오는 청각장애인들이 만드는 수제 구두 브랜드다. 장애인복지관 관장을 지내며 가까이서 장애인의 삶을 지켜본 유 대표는 재주가 좋으나 소통이 안 된다는 이유로 가난하게 사는 청각장애인에게 안정적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지난 2010년 아지오를 론칭했다.
아지오가 화제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폐업 이후였다. 지난해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문 대통령이 신고 온 낡은 구두가 한 누리꾼의 눈에 띈 것.
유 대표는 "2011년에 매장이 없어 유목민처럼 이곳저곳에서 구두를 팔았다"며 "국회에서 3일간 구두를 팔았었는데 당시 민주통합당 대표 대행이었던 문 대통령이 아지오 구두를 샀다. 그렇게 오래 신어주실 줄은 몰랐다"면서 그때를 회상했다.
성남시에 들어선 아지오의 공장에 전시된 시제품 모습, 한 켤레에 20만원이다 [사진 = 엄하은 인턴기자]
이후 그는 지난해 초 청와대로부터 '문 대통령이 아지오 구두를 재구매하고 싶어 한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아지오의 재기를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그는 "경영난으로 운영 3년만에 폐업하게된 아지오는 나의 한이었다. 만약 일시적인 관심으로 사업을 다시 시작했다가 장애인 직원들에게 또 상처를 주는 것 아닐까 싶었다"면서 "하지만 시민들이 십시일반 모은 펀드 금과 유시민 작가가 홍보모델을 해주는 등 여기저기서 도움의 손길이 와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유 대표는 재기 기반을 다지기 위해 5억원을 목표로 펀드를 조성했다.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기업들의 제안도 많았지만 그는 국민들과 함께 아지오를 키워보자는 생각으로 이를 거절했다. 10만~50만원으로 소액으로 제한된 펀드 금액이었지만 시민들의 성원으로 총 2억원이 넘게 모였고 차입금을 합쳐 약 3억 5000만원이 모여 아지오의 재기 발판을 마련했다.
경기도 성남시 상대원동의 한 건물에 공장과 사무실을 꾸린 아지오는 현재 6명의 청각장애인과 1명의 지체장애인 그리고 47년의 경력을 지닌 구두 장인이 멤버다. 유 대표는 직원들을 성남 지역 장애인으로 꼼꼼한 손재주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선별했다. 정식 오픈도 하기 전이지만 아지오의 온라인 선주문량은 230여 켤레에 이른다.
아지오 브랜드 홍보 모델인 유시민 작가와 유희열 작곡가의 모습 [사진 제공 = 구두 만드는 풍경 '아지오']
물론 시민들이 관심을 나타내고 있지만 아지오에 대한 편견도 쉽게 거두지 않았다. 유 대표는 "장애인이 만든다는 사실에 구두의 질을 의심하거나 장애인 전용 구두를 만든다는 오해가 있었다"라며 "하지만 이 두 가지 편견은 문 대통령이 오랜 시간 신어 닳은 신발 사진 하나가 설명해주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그는 이어 "시장은 냉정하다"라며 "제품의 품질이 떨어지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또 직원에게 상처를 주지 않나"고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그는 "죽을 각오로 할 것"이라며 "직원들의 꿈이기도 한 아지오를 다시 무너뜨릴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치열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좋은 가죽과 꼼꼼한 실력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유 대표는 "가능한 직접 치수를 재서 신발을 만들고 개인 발틀을 평생 보관하는 등 다른 기업과 차별화를 통해 살아남겠다"라며 "청각장애인들에게 안정적인 일터를 제공하고 구두 만드는 기술을 가르쳐 구두 산업을 이어갈 수 있는 훌륭한 장인을 양성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디지털뉴스국 엄하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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