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를 시작한 직장인 한수연 씨(가명·29)는 매일 저지방 우유 한 잔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점심에는 현미밥과 함께 두부, 샐러드 등 건강 일반식으로 챙겨먹는다. 퇴근 후에는 체중관리를 위해 저녁을 굶고 운동을 갔다오면 시간은 어느덧 밤 9시다. 한씨는 이때부터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한다. 갑자기 밀려드는 출출함에 습관적으로 야식이 생각나기 때문. 하루동안 철저하게 식단관리를 했지만 결국 이날도 전화를 들어 배달음식을 시켜먹고 말았다.
한씨와 같이 아침과 낮에는 식욕 부진을 느끼거나 극단적인 식단 관리를 하면서 저녁에는 고칼로리의 음식을 끊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일주일에 3일 이상 밤에 자다가 깨거나, 먹지 않으면 잠들기 어려운 불면증을 보이기도 한다. 저녁 7시 이후의 식사량이 하루 전체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야식 증후군'의 대표적인 증상이다.
야식증후군은 야근 등으로 밤늦게 활동하는 인구가 많아지면서 생긴 현대인의 병 중 하나다.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진 않았으나 스트레스에 대한 비정상적인 반응, 우울함과 불안함, 자신감 상실 등의 심리적·정신적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다.
우리 몸은 식욕을 조절하기 위해 '그렐린'(Ghrelin)과 '렙틴'(Leptin)이라는 두 가지 호르몬을 분비한다. 이 호르몬들은 낮에는 에너지를 소모하고 밤에는 에너지를 축적하는 역할을 한다. 밤에는 식욕 억제 호르몬인 렙틴과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이 나오면서 몸의 생체시계는 돌아간다.
그러나 반복적인 야식 섭취로 생체시계가 망가진 야식증후군 환자의 경우에는 밤에는 렙틴과 멜라토닌 수치가 낮은 경향을 보인다. 상대적으로 식욕 촉진 호르몬인 그렐린은 높은 수치를 기록하면서 잠을 자지 못하고 야식을 찾는 악순환이 발생하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야식 증후군에 시달리는 비율이 높다. 24시간 편의점이나 밤 11시에도 전화 한 통이면 해결되는 배달문화가 발달된 탓이다. 국내에서는 약 10%가 야식 증후군에 시달리는 것으로 집계된다.
리서치 기업 엠브레인이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야식을 주제로 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10명 중 5명 이상(53.1%)은 1주일에 한 번 이상 야식을 먹는다고 답했다. 야식을 먹는 횟수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노동시간이 긴 직장인들의 경우 잦은 야근과 회식 등으로 밤늦게 깨어 있으면서 야식을 섭취하기 때문에 문제는 더 심각하다. 대부분의 야식 메뉴가 고당, 고탄수화물 음식으로 이뤄져 야식증후군의 확산이 더 빠르다는 얘기다. 실제 20·30대에서는 10명 중 8명이 야식증후군을 앓고 있다.
심경원 이화여자대학교 가정의학교실 교수는 "야식 증후군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규칙적인 생활습관과 아침식사를 거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렙틴과 그렐린이 균형을 이루어 안정적으로 분비된다면 충동적으로 야식을 먹는 습관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디지털뉴스국 김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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